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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칼럼 ④ - 덧붙이며] '작가의 꿈을 키워준 엄마'

작가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소중한 독자에게 좋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가 아닐까.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사촌 언니 집에 놀러 가면서 한국에서 쓴 동화책을 가져간 적이 있었다.

언니는 다른 선물은 필요 없다며 내가 쓴 동화책을 갖고 싶어 했다. 외국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보여줄 생각으로 가져온 책이었지만 흔쾌히 선물했다.

우리 부모님은 책을 사주는 걸 좋아하셨다. 동화책 전집이 매년 책꽂이에 그득하게 들어찼다. 그러면 서른 권이고 쉰 권이고 읽으며 행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책을 책꽂이에 꽂아주는 부모님의 마음도 참으로 설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 어린 나의 가슴과 머리에 생각과 감정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란 기대에 부푸셨을 게 분명하다.

참 신기한 것은 어느 순간부터 책을 만들고 나면 이 책을 읽고 난 아이들이 어떤 상상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그려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동화책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 새로운 감동과 생각을 심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영어도 읽지 못하던 어린 조카는 이제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가 되었다. 분명 언니는 내가 선물한 책을 몇 번 펼쳐보며 한국어로 읽어주었을 것이다. 

나의 동화책이 미국 뉴욕시 외곽의 2층집 어딘가에 꽂혀 있다고 생각하면 때로 웃음이 나온다.

작가의 꿈을 키워준 엄마

엄마를 떠올리면 늘 같은 모습이다. 커다란 통유리가 있는 마루에 앉아 <월간문학>이나 <현대 문학>과 같은 책을 읽는 모습. TV 보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로 엄마는 책을 좋아하신다. 

안중근이 누구인지 몰랐을 때 엄마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그의 명언을 들려주곤 했다.

초등학교 때 식사시간에 엄마의 그 말을 듣고 눈으로 보는 책과 입의 가시가 무슨 상관인지 늘 궁금해 했지만 그저 열심히 책을 읽으라는 말, 정도에서 그쳤던 것 같다. 

아마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고 말을 하면 남에게 상처를 주거나 옳지 않은 말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정말 그저 겁을 주려는 말일지도.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책을 좋아하는 만큼이나 글을 쓰는 것도 즐겼다. ‘예쁘고 총명한 내 딸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1년에 여러 통 받아 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그런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장래희망을 쓰는 과제에서 ‘작가’를 쓰는 딸을 보면서도 엄마는 왜 변호사나 외교관을 쓰지 않느냐고 나무라지 않았다.

취업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대부분 진학을 주저하는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내 꿈을 응원해줬던 엄마였다.

마지막으로 내 책장을 채웠던 전집은 바로 ‘이원수 문학전집’이었다. ‘고향의 봄’이라는 노래에 가사를 쓰신 아동 문학가 이원수 선생님이 쓴 동화를 모두 모아놓은 책이었다. 

그 전집을 책꽂이 가득 꽂던 엄마의 모습이 잘 잊혀지지 않는다. 1960년대에 쓰인 오래된 동화들을 내가 읽으면서 작가가 된다는 게 얼마나 가치 있고 의미가 있는 일인지 알게 되리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여전히 고향집 책꽂이 제일 위에 꽂혀있는 이원수 문학전집을 볼 때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던 이원수 선생님을 그려보고, 그의 문학 정신을 알기 바랐던 엄마를 생각한다. 

막연히 글 쓰는 게 좋아서 작가가 되겠다고 말하던 어린 나를 위해 엄마가 해준 가장 의미 있는 선물이 아니었을까.

다가와라 30대! 멋지게 만나 주마!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내 직업이 동화작가라고 말하면 곧 이어지는 질문은 출판한 책도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면 당장이라도 검색을 해 볼 기세로 스마트폰을 꺼내는 사람도 있다.동화를 쓰는 일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이 이어지다가 “조카가 있으니 동화책을 한 권만 선물해 주세요”로 귀결된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에게 초대받아서 대접받는 한 끼 식사처럼 동화를 쓰는 작가에게 할 수 있는 평범한 인사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기지만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고 또 조카가 생기면서 점점 마음이 달라진다.

책은 쓰고 나면, 출판이 되고 나면 무를 수가 없다. 좀 더 정성을 다 해서 남에게 선물할 수 있을 정도의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다른 종류의 글을 쓰는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한다.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쓸 수 있어서 좋겠단다. 하지만 막상 친구와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출판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화작가만큼 머리 아픈 직업도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독자는 어린이지만 구매층은 부모이니, 부모가 읽었을 때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하고 아이들은 읽으면서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턱을 괴고 앉아서 생각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 건가. 서른을 기점으로 내가 살아온 시간을 더듬어 보는 날이 많아졌다. 

다시는 저지르지 않아야 할 실수는 뭔지, 그리고 꼭 이뤄야 할 꿈은 어떤 게 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고 싶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과 함께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을 배우고 싶다. 

동화를 기획하고 쓰는 일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장르의 글도 쓰고 여행을 다니면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그것들을 내 안에 채워 나가는 것이 바람이다.

꿈이야 많지만 매 순간을 행복하게 사는 것, 결국 그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미래에 도달했을 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서 난 과거에 왜 그렇게 불행해야만 했나 후회한다면 어떻겠나. 미래의 순간도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어떤 일을 해서, 혹은 보상을 받는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는 행복하다’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 주변에서 아무리 “넌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해 준다고 해도 본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영원히 불행한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글을 쓰고 싶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글이었으면 좋겠다. 고민이 있을 때 꼭 연락을 하게 되는 선배는 조언을 하기 전에 잊지 않고 꼭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의 내 의견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마. 몇 달 뒤에 나는 달라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실 책을 쓴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활자로 찍혀서 기록에 남게 되니 말이다.몇 십 년 뒤 내 딸이 나에게 와서 이 책을 펼쳐 보이며 “이때는 엄마가 이러더니 왜 달라졌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연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방종하거나 무책임한 삶을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성장하고 또 달라질 것이라고 스스로 창문을 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다.

동화책이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희망이 있고 감동이 있는 글을 쓰는, 매일 꿈을 꾸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막 서른이 된 나는 지난 29년이 어떻게 흘러가 버렸는지, 때로는 시간의 힘에 섬뜩함을 느낀다. 

동시에 어떻게든 잘 견뎌온 내 자신을 격려하기도 한다. 동화작가라는 이름을 얻을 수 있었던, 이제는 지나가버린 20대의 순간들을 다독거리며 외치고 싶다.

동화작가 김혜린 칼럼

 

다가와라 30대! 멋지게 만나주마! 조금은 떨리는 마음을 숨기며 당당하고 패기 있게 다시금 펼쳐질 열정의 시간을 만끽하고자 한다.

CBC뉴스  press@cb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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