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민주당으로 16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원유철이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할 무렵 이재오는 원내총무였다. 그런 원유철이 탈당하는 이재오의 등 뒤에다 "복당은 없다"고 한다. 참 '아이러니'하다.
3선 이상이 맡던 집권당 원내총무를 재선으로 맡은 사람은 이재오가 처음이다. 이재오는 3선 때 원내총무를 또 맡았을 만큼 동료의원들의 신망이 두터웠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새누리당이 싫어서 탈당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원유철이 원내대표를 맡은 것은 지난해 박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 호소에 유승민이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다.
유승민은 원유철을 러닝메이트(정책위의장 후보)로 선택해 친박계 이주영‧홍문종 팀에 승리했으니, 원유철을 정책위의장으로 만들어 원내대표의 길을 열어 준 사람은 바로 유승민이다.
그런 원유철이 유승민의 등 뒤에다 "복당은 없다"고 했다니 참 고약하다.
정치는 자주 아이러니를 만든다. 8년 전 '공천학살'의 칼을 휘두른 이방호 사무총장도 탈당하는 친박계 인사들의 등 뒤에다 "복당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이방호는 떨어지고, 탈당한 친박계는 전부 당선돼 복당했다.
이 아이러니는 "권력을 잡았다고 해서 '조자룡의 헌 칼'처럼 마구 휘두르지 말라"는 국민의 경고가 아니겠는가.
당시 공천을 받은 친이계 핵심들은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반면에 공천 떨어지고 탈당한 서청원, 김무성 등은 친박연대로 14명, 무소속으로 25명 등 39명이 당선됐고, 모두 복당해 현재 새누리당의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바야흐르 탈당의 계절이다. 탈당은 왜 하는가? 출마하기 위해서다. 불공정한 심사로 억울하게 낙천된 후보자가 유권자들에게 직접 심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탈당밖에 없다.
그러므로 '불공정 공천은 탈당의 어머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정치인이 탈당해 당선되고 다시 복당하는 '금의환향'을 자주 봐왔다.
낙천자가 공천이 잘못됐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탈당과 출마 밖에 없기에 탈당은 최후의 수단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극단적 정치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럼 탈당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공천을 공정하게 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방법은 경선이다. 경선에서 지고 탈당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경선에서 진 사람이 출마할 수 없도록 만든 조항을 소위 '이인제법(法)' 또는 '이인제조문(條文)'이라고 한다.
19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경선에서 2위를 한 이인제가 탈당해 출마함으로써 경선 1위 후보 이회창의 낙선에 크게 기여했다.
이인제는 무려 492만여 표를 받았는데, 이회창은 불과 39만여 표 차로 낙선한 것이다. 이로 인해 경선에서 떨어진 후보는 출마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하게 됐다.
경선승복의 역사에서 반면교사로 큰 역할을 한 이인제는 '탈당기록보유자'다.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했다가 새천년민주당에 통합됐고, 2002년에는 새천년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풍(노무현바람)에 패한 뒤 또 탈당해 김종필의 자민련에 입당하였다. 2008년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자유선진당에 입당했다가 2012년 총선 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인제는 자기 때문에 김대중에게 정권을 뺏겼다고 생각하는 당원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새누리당의 지난해 경선에서 4위로 당선돼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활동하는 저력의 정치인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가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아이러니로 보여준다. 즉 정치는 아이러니를 만들어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도 하고, 정치를 우습게 여기는 교만을 일깨워주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의 생명의 근원은 무엇일까? 바로 국민이다. 정치의 아이러니를 만들어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주체는 국민이다. 국민은 가끔 정치의 아이러니를 보여줌으로써 정치인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정치 똑바로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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