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13일은 20대 총선 투표일이다. 그러나 97년 전 4월 13일은 민족대표들이 중국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 건국을 선포한 날이다. 일부에서는 '건국절 주장'으로 폄하하고 있지만, 97년 전의 그 날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을 만든 '건국자들(國父, Founding Fathers)'은 1919년 4월 13일을 건국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1948년 8월 15일 공표된 제헌헌법은 첫머리(前文)에 "(전략)…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建立)'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再建)'함에 있어서…(후략)"라고 함으로써 대한민국을 1919년에 '수립'하고 1948년에 '재건'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관보 제1호는 제헌헌법을 공표하면서 '대한민국 30년 9월 1일 공보처 발행'으로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1919년 4월 13일 13도민의 대표가 상해에 모여 대한민국을 선포했다"고 한 것과 일치한다.
이와 같이 1948년 건국 당시의 자료들은 하나같이 '30년 전에 대한민국을 수립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건국자들은 1919년을 대한민국 수립 원년, 이후의 해방과 헌법제정 등은 건국의 과정으로 보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의 독립과정에 비교해 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미국은 1776년에 독립선언을 했지만, 전쟁이 끝나고(1783) 헌법을 제정하여(1787) 대통령을 선출(1789)하기까지 13년이 걸렸다.
미국은 독립선언일을 크게 기념하면서 나머지는 독립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은 처음부터 독립을 목표로 전쟁을 시작한 게 아니었다. '보스턴 차(茶)사건'으로 촉발된 식민지의 반란에서 민병대와 대륙군이 2만여 명에 달하는 기세를 올리자 보스턴에 주둔한 영국군은 식민지군의 탄약창고를 파괴하기 위해 1775년 4월 19일 렉싱턴과 콩코드를 공격했다.
이에 식민지군은 반격하여 1776년 3월 17일 영국군을 보스턴에서 몰아냈다.
최초의 무력충돌 후 한 달 뒤 필라델피아에 모인 식민지 대표들은(제1차 대륙회의) 영국과의 전쟁을 결의하고 식민지연합군을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국부의 한사람인 패트릭 헨리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연설을 한 것도 이 때였지만, 독립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었다. 영국의 부당한 탄압에 대한 저항을 목표로 하였을 뿐, 영국은 모국이란 의식이 지배적이었다.
다음 해(1776) 개최된 제2차 대륙회의에서 비로소 독립선언서를 채택하게 된다. 독립선언서가 공표된 날은 7월 6일이지만, 토머스 제퍼슨이 초안을 제출한 7월 4일을 기념하는 것은 탄압에 대한 저항을 독립전쟁으로 승화시킨 국부들의 뜻을 중시하는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즉 독립선언은 '식민지의 반란'을 '독립전쟁'으로 승격시킨 중요사건이고, 그 이후는 독립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1919년 3월 1일을 독립선언일로, 4월 13일을 대한민국 선포일로 보고, 이후 1948년까지를 독립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3.1운동의 결과 13도 민족대표들이 상해에 모여서 1919년 4월 10일 '임시의정원'을 개원하였고, 새로 건국할 나라이름을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명시한 '임시헌법'을 발표하였다.
4월 13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하고, 파리강화회의에 주권국가로 승인해 줄 것을 요청했다. 9월 11일에는 한성정부와 노령정부를 통합하여 유일한 임시정부가 되었으며, 1920년 1월 24일 포고1호를 통해 "전 국민이 독립군이 되어 독립전쟁에 참가할 것"을 호소하였다.
또 194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1941년 12월 10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였다.
이와 같은 독립운동은 모두 3.1독립운동과 4.13국가수립 선포를 기점으로 전개되고 있으므로 1919년 4월 13일은 대한민국 건국일로, 이후의 1945년 및 1948년까지는 건국과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것은 독립운동가와 건국자들의 뜻에도 부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4월 13일은 중요한 날이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서는 우리 모두가 97년 전에 선열들이 나라 잃은 설움을 딛고 해외에서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던 날을 되새기며 연고와 정실을 버리고 희망과 미래를 향해 투표하기를 기대해 본다.
[류재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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