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은 서울XX법원 ▢▢부 재판장과 지연․혈연․학연의 연고가 없고, 사법고시 및 연수원 동기가 아니며, 법원(또는 검찰)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없는 등 아무런 연고가 없으므로 선임계를 제출합니다."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그러나 웃을 일만도 아니다. 법조비리가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범죄자가 변호사에게 거액의 자금을 제공하고 판검사에게 로비하여 무혐의를 받거나 형량을 낮추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법조계의 검은 커넥션과 거액로비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100억 원대 원정도박사건으로 지난 해 구속된 네이처리퍼벌릭 정운호 대표가 변호사에게 수임료문제로 다투다가 터진 사건이 법원과 검찰을 송두리째 흔들 사건으로 증폭되고 있다.
부장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는 정운호에게 50억 원을 받았다가 보석이 허가되지 않자 30억 원을 돌려주었으나 정운호는 나머지 20억 원을 돌려달라고 하다가 불거진 사건이다.
최 변호사는 또 1300억 원대의 투자사기 혐의로 1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받은 이숨투자자문 송창수 대표에게 50억 원을 받았는데, 2심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고 한다.
함께 수사대상에 오른 검사장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2012년부터 정운호의 300억 원대 마카오 원정도박혐의를 수사하는 경찰과 검찰에서 변호를 맡아 2차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홍 변호사는 수임료로 1억5천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사건을 소개한 이모 브로커에게 3억 원을 소개비로 주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실제로는 수십억 원의 수임료를 받아서 로비를 했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는 또 솔로몬저축은행사건을 후배변호사에게 소개해주고 '퇴직 후 대검 수사사건의 수임제한기간 1년'을 넘기자마자 변호인단에 합류하여 수임료 7억 원의 절반을 돌려받았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전관예우'만이 문제가 아니다. 현직 검사장인 진경준은 게임업체 넥슨의 비상장주식을 126억 원에 매각하여 조사를 받고 있다.
넥슨의 김정주 회장과 대학동기라고 하지만, 진검사장이 금융정보분석원과 금융조사부에서 부장검사로 있던 시절에 장외거래가 거의 없었던 넥슨 주식을 80만 주나 보유했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합리적 의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다.
현직 여검사가 불륜관계의 남자변호사에게 수사관련 청탁과 함께 5500만 원의 뇌물을 받은 '벤츠 여검사 사건'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이 사건은 내용도 막장이지만, 2심에서 '변호사가 샤넬핸드백, 법인카드 등을 준 것은 내연관계에 따른 것이며, 벤츠승용차를 준 것은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증표'라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도 사건내용 못지않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었다.
법조비리는 도덕성과 청렴성에서 최상위에 있어야할 법조인들이 조폭이나 양아치 수준의 '끼리끼리 해먹기'로 법치국가의 정당성을 훼손하고 사회정의를 짓밟는 범죄행위이다.
그러므로 간첩죄나 여적죄(적국을 돕는 범죄)에 못지않은 강력한 처벌과 함께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 절대다수는 법조인의 도덕성이 일반국민보다 훨씬 높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수시로 터지는 파렴치한 법조비리사건은 성실하게 살아가는 국민을 허탈하게 만들고,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최고권위의 대법관 후보들이 청문회에서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등으로 곤욕을 치르는 것은 약과다.
모 검찰총장은 술집 여자와의 사이에 혼외자녀를 두고, 대검간부들과 그 술집에 가서 '형수님'이라 부르게 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판검사들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수사하고 재판하면서 자신들은 특별히 도덕적인 존재로 우월성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법조비리사건이나 법조인들의 청문회를 보면 오히려 정치인이나 공직자보다 추악한 경우도 많다.
가장 큰 문제는 '전관예우'로 대표되는 법조인의 커넥션이다. 법대 동창, 연수원 동기를 비롯하여 법원검찰에서 함께 근무한 친분이 사건의 진실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우려가 많다.
사건이 터지면 법조브로커들은 재판장과 등산을 함께 하는 변호사, 수사검사와 폭탄주를 함께 마시는 변호사를 귀신같이 찾아낸다고 한다.
피의자는 수사검사나 재판장과 친한 변호사를 소개해 주면서 무혐의나 무죄판결을 받아주겠다고 하는 브로커에게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커넥션을 방지하기 위해 법조인은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대법관·법원장급·검사장급 이상은 10년, 부장판사 및 부장검사 이상은 5년 동안 변호사 개업을 못하도록 한다거나 자신이 근무했던 법원․검찰청 관할구역에서 변호사활동을 금지하는 것도 전관예우·연고재판을 막는 방법이다.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이라고 항변하겠지만, 변호사만 그런 게 아니다.
국회의원은 겸직금지를 법으로 정하고 있으며, 사업․이권에 관련 있는 상임위도 배제하고 있다.
공무원들도 퇴직 후 일정기간 관련기관․단체에 취업이 금지되고 있다. 특히 도덕성과 청렴성에서 최고 수준을 요구받는 법조인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보다 훨씬 엄격한 제약이 필요할 것이다.
또 판검사나 변호사의 비리사건은 '그 나물'이 수사하고 '그 밥'이 재판할게 아니라 경찰이나 특수조직에서 수사하고 국민배심원단의 재판을 받게 하여 '가재는 게편식 재판'을 막는 방안도 필요하다.
특히 법조비리로 일정 형량 이상을 선고받으면 변호사자격을 영구박탈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법조인의 범죄이므로 처벌 또한 그만큼 강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를 지탱하는 최후 보루는 '성직자와 법관의 양심'이라고 한다. 아무리 썩고 병든 사회일지라도 성직자와 법관의 양심은 살아있어야 한다는 역설이다.
법치국가를 떠받치는 기둥인 법조계가 법치의 뿌리를 흔들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법조계가 정의를 짓밟는 상황이라면 법률이 허용하는 최강의 비상적인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류재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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