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작가, 조선일보 칼럼 기고 내용 논란 … "촛불집회가 국민을 대변하는가"
한국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문열 원로 작가가 조선일보에 촛불집회를 비하하는 칼럼을 써 구설수에 올랐다.
이문열 작가는 2일자 조선일보에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여 자라길'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하고 현 시국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독자들에게 전했다.
네티즌들에게 논란이 된 대목은 촛불집회에 참석한 국민이 100만을 훌쩍 넘었지만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 국민의 모든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느냐란 의문이었다. 즉 이들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요구를 민심으로 볼 수 없다는 부정이었다.
또한 지난 주말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8시를 기준으로 1분간 소등을 하는 행사가 북한의 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인 '아리랑 축전'과 흡사하다며 집회에 참석한 한 지인은 "으스스한 느낌마저 받았다"고 밝히는 등 집회를 선동하는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단 간접적인 암시를 했다.
이는 김진태,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 등 촛불집회가 좌파 세력이 이끌고 있다는 발언과 흡사함을 느끼는 주장이다. 네티즌들은 이문열 작가의 칼럼을 두고 불쾌한 감정을 쏟아냈다.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네티즌들은 "이문열 작가님이 보수적 색채를 가진 건 익히 알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촛불집회를 매도하는 건 극히 한쪽으로 쏠린 극우적인 발언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은 왜 보나. 편협적인 주장이다", "이문열 씨, 한때나마 당신을 존경했던 제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군요. 온갖 감정적인 단어들로 선동하는 당신이야말로 좌파세력에 가깝습니다", "이 시국에 이런 칼럼을 싣는 조선일보답다. 홍위병 발언 또 하냐"는 반응이었다.
소수에 불과했지만 이문열 작가의 칼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네티즌도 있었다. 이들은 "옳은 말씀입니다. 이대로 가다간 좌파 세력들에 국가가 전복될 겁니다. 보수층의 결집이 필요한 때입니다", "잃어버린 10년(김대중-노무현 정부)을 겪고도 정신을 못 차린 우매한 이들에게 촌철살인과 같은 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문열 작가는 1948년 서울 생으로 본명은 이열이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새하곡'이 당선돼 등단했다. 능란하고 교양적인 문체와 다양한 작품세계를 지닌 소설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들 사이에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와 함께 보수 논객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 비판과 칭찬을 동시에 받고 있다.
이문열 작가의 부친인 이원철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북했고 그해 어머니를 따라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이사를 갔다. 유년기 이사를 자주 다녔고 정규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했다. 1953년 안동으로 이사를 가 중앙국민학교에 입학한 후 1957년 서울로 이사해 종암국민학교로, 1958년 밀양으로 이사해 밀양국민학교로 전학을 가 1961년 졸업했다. 같은 해 들어간 밀양중학교는 6개월 만에 중퇴했다.
이후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1964년 안동고에 입학했으나 1965년 중퇴하고 1968년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서울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대학생 시절인 1970년 사법고시 준비를 위해 대학교를 중퇴했지만 세 번 연속 떨어졌다.
1973년 결혼한 후 곧장 군에 입대했으며 1976년 제대한 뒤 대구에서 학원 강사로 일하다 1977년 대구매일신문의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입선됐다. 이듬해 이 신문사에 근무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이문열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79년 중편소설 '사람의 아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순식간에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 작품은 1973년 모 잡지의 신인 모집에 투고됐던 소설이나 예심도 통과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이문열 작가는 이후부터 왕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1980년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필론과 돼지' 등을 발표했으며 1981년에는 '젊은 날의 초상', '금시조', 1982년에는 '황제를 위하여', '칼레파 타 칼라', '익명의 섬'을, 1983년에는 '레테의 연가', 1984년에는 '영웅시대'를 발표했다.
1982년 금시조로 동인문학상을, 1983년 황제를 위하여로 대한민국문학상을, 1984년 영웅시대로 중앙문화대상을 수상했다. 1983년엔 평역 삼국지의 자료 수집을 위해 대만을 다녀오는 열정을 보였다.
1986년 대하소설 '변경'을 한국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고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을, 1988년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1990년 '시인'을 발표했다. 1987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을, 1992년 시인과 도둑으로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에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를 출간해 현재까지 약 1800만 부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1991년에는 '이문열 평역 수호지'를 출간했다.
1994년엔 '이문열 중단편전집'이 출간됐으며 이해 세종대 교수로 부임했다. 1994년 뮤지컬 명성황후의 원작인 장막 희곡 '여우 사냥'과 단편 '아우와의 만남' 등을 발표했으며, 1997년에는 장편소설 '선택'을 출간해 여성주의 진영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1998년 '변경'이 전 12권으로 완간됐고 같은 해엔 부악문원을 열어 후진 양성에 힘쓰기 시작했다. 1998년 '전야, 혹은 시대의 마지막 밤'으로 21세기문학상을, 1999년 변경으로 호암예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에는 '아가'를, 2001년에는 '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등을 발표했다. 이해 한 매체에 투고한 칼럼에서 시민단체를 정권의 홍위병에 비유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이문열 작가의 책 장례식까지 당하는 일이 일어났지만 보수 성향의 발언들을 굽히지 않았다. 2003년에는 한나라당의 공천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2006년에는 '호모 엑세쿠탄스', 2008년 '초한지', 2010년 '불멸', 2011년 '리투아니아 여인'을 출간했다. 이문열 작가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도에 모두 연재소설을 투고하는 기록도 세웠다. 2012년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을, 201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2009년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로 임용돼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지만 이석기, 임수경 전 의원 등을 배출한 외국어대의 성향 덕분에 강의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문열 작가는 전두환 정부인 제5공화국 때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국회의원 공천 제의를 받았으나 공천을 거절했다. 그러나 2004년에는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수락했다. 1990년 무렵 한때 장기표, 이우재 등 재야세력이 주축이 된 민중당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이문열 작가는 정치색이 강하다보니 진보적인 작가들 사이에서는 극우 작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의 주요 정치적 발언은 김영삼 정부 시절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이 이뤄졌을 때 "이런 식으로 쿠데타 세력을 처벌하면 이 이후에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처벌받기 싫어서라도 죽을 때까지 권력을 붙잡고 놓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1년 '홍위병 발언'은 매우 유명하다. 그해 7월 1일 이문열 작가는 조선일보에 당시 정부의 언론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내용의 시론을 썼다. 이를 두고 추미애 의원은 '곡학아세'라는 표현을 쓰는 등 해당 시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단체까지 비판에 나섰음에도 불구, 이문열 작가는 7월 8일 일부 시민단체를 홍위병에 비유하는 칼럼을 동아일보에 써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노무현 정권 당시 신기남의 조상이 친일파였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친일청산 아젠다의 형평성과 신기남을 저격하는 내용인 '겜뻬이 고쬬와 오니 게이부'라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투고해 제2의 홍위병 발언이란 비판이 쇄도했다.
이문열 작가가 조선일보에 투고한 칼럼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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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대한민국… '보수의 길'을 묻다] [5] 소설가 이문열
"위기의 보수, 쇠퇴하고 허물어진 정신의 허울부터 벗어야"
죽기 좋은 계절이다. 참으로 많은 죽음이 요구되고 하루라도 빨리 그 실현이 앞당겨지기를 요란하게 기다리는 시절이다. 매스컴은 그런 죽음을 예고하고 혹은 초대하는 이야기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악머구리 들끓듯 하고 광화문광장은 벌써 두 번째로 백만을 일컫는 촛불에 휘황하게 밝았다.
아주 예전에 읽어 제목과 지은이조차 기억에 가물가물한 이탈리아 극본 한 편이 떠오른다. 어느 나라인가 여왕의 어지러운 통치 때문에 폭동이 일어나 국가권력은 전복되고 여왕은 잠적하였다. 폭도가 수도 길목을 막고 여왕을 수색하는데 어느 새벽 여왕을 빼닮은 창녀 하나가 재수 없게 걸려든다. 폭도는 그 창녀를 끌고 가 며칠 심문이랍시고 갖은 모욕과 고통을 주며 그녀가 여왕임을 자인케 한 뒤 엉터리 재판에 넘겨 처형장으로 보낸다.
그런데 형장에 이르자 그렇게도 자신이 여왕이 아님을 주장하고 살려주기를 애원하던 그 창녀가 홀연 여왕의 의연함과 위엄으로 군중 사이를 가로지른 뒤 총살대 앞에 선다. 자신을 여왕이라고 믿고 있는 군중을 위해 여왕의 기품과 비장함을 스스로 연출한 것인데, 놀랍게도 군중은 진정한 애도의 눈물과 탄식으로 자신들의 여왕을 보낸다. 보아라, 우리의 여왕이시다. 여왕께서 의연히 죽음과 맞서신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창녀는 세상의 그 어떤 여왕보다 더 품위 있고 고귀한 여왕이 되어 죽는다.
또 16세기 수피즘의 시인 술탄 바후의 노래 가운데는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 모두가 두려워하는 죽음/ 사랑하는 이는 기꺼이 맞네/ 그래야만 참으로 사는 거니까.'
그리고 또 다른 노래에서는 마호메트의 금언을 빌려 한 구절 보탠다. '여보게 바후/ 죽기 전에 죽세/ 그래야 그분께 이를 수 있다네.' 여기서 죽기 전의 죽음이란 정신적 죽음, 참다운 소생을 위한 낡은 정신의 죽음 같은 것을 말하지만 요즘 같은 때는 왠지 되새겨 보게 되는 구절이다.
무엇에 홀린 듯 여성 대통령의 미용이나 섭생까지 깐죽거리며 모욕과 비하를 일삼다가 그것도 특종이랍시고 삼류 도색 잡지도 다루기 낯간지러운 사생활에 대한 억측과 풍문을 무슨 큰 폭로라도 되는 것처럼 뉴스로 쏟아내는 매스컴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있을 수 있다. 무슨 교수, 무슨 평론가, 무슨 전문가 해서 풍채 좋고 언변 좋은 양반들이 온종일 종편이 펼쳐준 좌판에 몰려 앉아 대통령 여당 몰매 놓기로 의식 수준의 고하를 겨루거나, 대통령 속곳까지도 슬쩍슬쩍 곁눈질하며 최가네 일족 잡상스러움을 시시덕거리거나, 문고리 몇 인방이니 친박 개박 매화타령 하며 킬킬거리는 모습이 보기 민망스럽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입 냄새도 안 나는지 저쪽에서 무슨 소리를 해도 입 꼭 다물고 앉은 대통령이나 집권 여당의 논객들은 지난 몇 달 매스컴의 모진 찧고 까불기에 여지없이 부서져 보수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 나게 만들었다. 위기란 곧 존립이 위협당한다는 것, 먼저 죽어 거듭나지 않으면 보수의 미래는 없다. 이 쇠퇴하고 허물어진 정신의 허울 벗고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이 땅에서 보수는 다시 발 디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죽기 전에'는 문고리나 친박 비박뿐만이 아니라 보수 일반의 정신에까지 여전히 유효한 권유가 된다.
이제는 매스컴이 스스럼없이 '국민의 뜻'과 혼용하는 광장의 백만 촛불도 마찬가지다. 지난번에 문재인 후보를 찍은 적극적 반대표만도 1500만표에 가까웠고, 대통령 지지율 4%가 정확한 여론조사였다면 이 나라에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유권자만도 3000만이 훨씬 넘는다. 아니,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친다면 4500만도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 100만이 나왔다고, 4500만 중에 3%가 한군데 모여 있다고, 추운 겨울밤에 밤새 몰려다녔다고 바로 탄핵이나 하야가 '국민의 뜻'이라고 대치할 수 있는가. 그것도 1500단체가 불러내고, 매스컴이 일주일 내 목표 숫자까지 암시하며 바람을 잡아 불러 모은 숫자가, 초등학생 중학생에 유모차에 탄 아기며 들락날락한 사람까지 모두 헤아려 만든 주최 측 주장 인원수가.
심하게는 그 촛불 시위의 정연한 질서와 일사불란한 통제 상태에서 '아리랑 축전'에서와 같은 거대한 집단 체조의 분위기까지 느껴지더라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지난 주말 시위 마지막 순간의, 기계로 조작해도 어려울 만큼 정연한 촛불 끄기 장면과 그것을 시간 맞춰 잡은 화면에서는 으스스한 느낌마저 들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어찌하랴. 그 촛불이 바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난 민심이며 또한 바로 '국민의 뜻'이라는 것은 지난 한 달 야당의 주장과 매스컴의 호들갑으로 이제 누구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논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큰 뜻을 거역할 수 없어 가까운 날 대통령의 자진 사퇴라도 이루어지면, 그래서 비상한 상황의 권력 변동이 일어나면 보수의 위기는 한층 더 확정적인 사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보수의 길은 하나밖에 없다.
죽어라, 죽기 전에. 그래서 진정한 보수의 가치와 이상을 담보할 새로운 정신으로 태어나 힘들여 자라가기를. 이 땅이 보수 세력 없이 통일되는 날이 오기 전에 다시 너희 시대를 만들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