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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징벌

우리 속담에 '맞은 사람이 오히려 두발 뻗고 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약자나 피해자를 ‘진정’으로 위한 말이다. 더 쉽게 말하면 약자나 피해자를 위로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맞은 것이 잘 한 일 같게 느껴지기 까지 한다. 권선징악이 살아있고 정의가 있고 순리가 있는 그런 규칙대로 세상이 움직일 때는 이 말이 맞았다.

이를 부득 부득 갈면서도 계란으로 눈탱이를 어루만지면서도 슬며시 웃을 수 있었다. 이 속담은 서민의 한을 달래기 위해 서민이 만든 말이라고 짐작된다.

여태까지 이 말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말은 사실 최악의 상황에 던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이런 경우를 자주 당한다는 것은 그가 엄청난 약자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가드라는 말이 있다. 복서에게 가드는 생명이다. 턱을 가리고 배를 가리는 방어술을 말한다. 물론 옆구리는 비지만 최소한 치명적인 어퍼컷이나 보디블로는 피할 수 있다. 옆구리를 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은 흔지 않다.

그런 상대방을 만나는 것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 어떤 구타라도 배와 얼굴만 굳건하게 가리면 크게 안 다친다. 그러니까 맞은 놈이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죽지 않을 만큼 맞는다는 전제 하에서 맞는다라는 말이, 당한다라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지 초주검이 될 정도로 맞는다면 두발 뻗고 자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때부터는 좀더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선수가 아닌 사람끼리 치고받는 경우 조금 센 자가 이기고 센 사람은 괜히 때려놓고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때린 사람은 조금 참을 걸 하고 후회하는 마음이 앞설 것이다. 자 여기에는 양심이 개입된다 하겠다. 적어도 때린 사람이 오므리고 잔다는 말이 성립된다면 말이다.

가해자가 적어도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마음, 잘못했다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마음이 미안하고 인간적인 정의에서 잠시 못되게 군 것이 송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이런 태도는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서로 살을 맞대고 살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때린 사람이 반성한다는 것은 권선징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권선징악대로 사회가 움직이지 않더라도 권선징악이 미덕쯤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권선징악이란 개념을 도외시 한다면 때린 놈만 살판 날 뿐이다. 맞은 놈은 저 못나서 맞은 것이고 때린 넘은 저 잘나서 때린 셈이 된다.

이것은 권선징악의 도를 넘어선 세계로 들어가는 사회의 이야기다. 파렴치의 세계라고나 할까.파렴치한 세계에서는 양심이나 저어하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이 다 귀찮다.

권모술수나 임기응변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 여기에 돈과 권력이 더해지면 무소불위의 힘을 누리게 된다. 무소불위의 힘이 작용하면 권선징악이라는 말이 녹아버린다.

악에 대한 징벌을 할 수 없는 도구가 없는 세상을 떠올려 봐라. 별로 살 맛이 안날 것이다. 아무리 잘못해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 격으로 표변시키고 상황을 거꾸로 만든다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나올 말이 있다. 맞은 놈만 억울하다는 말이다. 억울하면 출세하고 억울하면 힘을 길러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말이 더 가게 된다. 인면수심이나 철면피란 말이 나올 수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맞은 사람이 때린 사람에게 배상을 해야 한다.

거꾸로 됐고 엉망진창 뒤죽박죽 돼버린 것이다.질서가 흩어지고 순서가 엉겨버렸다. 그래도 세상은 잘 돌고 있다면 고통받은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어떤 기관도 돈을 넘어서지 못하고 어떤 도덕도 권력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맞은 놈과 당한놈은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다.

적반하장이라는 말이 돌면서 세상은 ‘정의’지대 없이 암울해지고 희망이 엷어진다. 교활한 사람만 살아남고 약삭빠르기만 하면 살 수 있는 세상이 된다.

인간 이하를 돈과 권력으로 얼마든지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각성해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명예훼손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다.

23년 만에 두 전직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됐다. "새빨간 거짓말"이라 외친 전 대통령은 억울 하다며 정치보복을 주장한다.

그들의 돈과 권력이 아직도 당시 맞은 사람들을 두 다리 뻗고 자도록 두지 않는 세상이다. 방귀 낀 놈이 성내는 세상이다. 힘없는 서민은 아직도 턱을 가리고 배를 가려야한다. 치명상을 입지 않으려면 말이다.

심우일 기자  press@cb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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