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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에세이] 봄과 여름휴가 사이, 여행길의 즐거움

음력 4월 5일부터 술을 빚습니다, 이 술은 그냥 술이 아니라 신주(神酒), 바로 신에게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술을 빚는 쌀인 신주미는 고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마련합니다.

매년 3천 명 이상의 고을 사람들이 쌀을 내놓습니다. 이렇게 모인 쌀이 보통 8t 정도(80㎏짜리 100가마)입니다. 

이 쌀로 술을 빚고 떡을 만들어 온 고을 사람들과 외지에서 온 구경꾼들에게 나눠줍니다. 올해도 그곳에 가면 정성들여 빚은 술과 떡을 얻어먹을 수 있습니다.

바로 강원도 강릉시 이야기입니다.

강릉시에서는 음력 4~5월 한 달 이상 큰 잔치가 열립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인 강릉단오제(2016 Gangneung Danoje Festival)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여행의 ‘여’(旅)는 나그네라는 뜻입니다. 여행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이라고 풀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은 그냥 쉬거나 구경하기 위해 이곳저곳 돌아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경’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이번에 어땠어요”라고 물어보면 간혹 “에이~ 거기 별로에요. 볼 거 하나도 없어요”라는 답을 듣기도 합니다.

‘볼 거’는 바로 구경거리입니다. 조선의 재상을 지낸 정철은 앞서 말한 강릉 지역을 여행하며 ‘관동별곡’이라는 고전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동해안의 수려한 풍경을 노래한 가사집입니다.

사람들이 벌이는 큰 잔치도 구경거리입니다. 강릉단오제는 이런 구경거리로 따지면 으뜸입니다. 하지만 너무 구경거리에 집착하다보면 모처럼의 여행을 망치기도 합니다.

수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는 곳을 찾았다가 휴식은커녕 온가족이 온갖 고생만 하고 탈진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차량 행렬에 갇혀 짜증만 내고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행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말 그대로 쉬는 것입니다. 쉼을 뜻하는 한자 휴(休)는 나무와 사람을 나란히 그렸습니다. 농사를 짓다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쉬는 모양을 그린 것입니다.

쉴 때는 몸뿐만 아니라 머리도 쉬어야 합니다. 머리를 쉬도록 하는 일은 간단합니다. 바로 ‘멍 때리기’입니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떤 새로운 정보도 머리에 입력하지 않는 걸 말합니다.

멍 때리기의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증명이 됐다고 합니다. 멍 때리는 중에는 우리 뇌가 ‘디폴트’(default) 상태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기본값만 남기고 텅 빈 상태가 된다는 말이죠. 그런 쉼 상태가 됐다가 다시 활성화하면 뇌의 시스템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작동한다는 얘기입니다.

구경이나 학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멍 때리기 여행은 그래서 진정한 휴식을 줍니다. 하지만 처음 찾는 곳의 여행은 아무래도 작은 스트레스를 주기도 합니다. 

낯선 거리와 낯선 사람들, 낯선 음식들 사이에서 미열과 같은 흥분도 스트레스가 됩니다. 때로는 이런 낯선 거리에서 흔하게 먹을 수 있던 음식마저 새롭게 느껴집니다.

여행길 낯선 곳에 방을 잡고 맛있는 냄새에 몸을 맡겨 보세요. 낯설음과 친숙함이 어우러지면서 더 편안한 멍 때리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인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해야 하는 이때, 진정한 휴식이 가지는 마력을 경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기쁨을 맛보면 어떨까요?

이기호 기자  pree@cb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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