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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칼럼 ②] 어린이를 향한 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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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칼럼 ②] 어린이를 향한 나의 마음
  • CBC뉴스
  • 승인 2018.03.2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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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공항에서 총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본 적도 있다. 뉴올리언스를 한 방에 날려버린 태풍 카트리나를 만나 버지니아 깊은 산 계곡에서 급류에 휩쓸려 한참을 떠내려가기도 했다.

달마다 엄마가 부쳐주는 돈은 방값을 제하고 300달러 정도였다. 6개월간의 미국 여행은 내 인생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었다. 영어를 못했던 나는 시립도서관 어린이 책 코너에 가서 그림책만 읽어댔다.

물론 도서관과 여행만 다닌 것은 아니었다. 지인의 소개로 한국 아이의 논술과외를 하기도 했고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형극단에서 자원봉사를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지내다 보니 내가 얼마나 무식한 인간인지를 알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가 대학을 졸업하면 꼭 미국으로 유학을 와야겠다고 결심을 굳게 했다.

자료사진

지상의 낙원, 빅 아일랜드

한국에 돌아오자 유학을 향한 열망은 곧 잊혀졌다. 한국에서의 현실은 학점을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이력서의 칸을 채울 소위 ‘스펙’을 쌓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다양한 경력을 쌓은 덕분인지, 졸업을 앞두고는 여러 기회가 찾아왔다.

유명 잡지사의 기자, 교육 관련 출판사의 논술 출제 위원,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의 편집실 직원 등 생각보다 갈 수 있는 길은 많았다. 우선은 큰 고민 없이 하고 싶은 일부터 차곡차곡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났을 때쯤, 새로운 도전의 문이 열렸다. 미국으로의 유학이었다. 선교단체가 세운 대학교에 진학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에는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몇 달간 밤잠을 설쳐대며 고민했다.

떠나는 날 아침, 밤을 새워 쓴 원고를 출판사에 메일로 보내고 부랴부랴 짐을 싸고서는 오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누구의 배웅도 없는 조촐한 첫걸음이었다.

내가 머물던 빅 아일랜드는 하와이 주에서 가장 큰 섬이다. 제주도의 6배인 그곳은 하와이의 원주민을 관광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섬에는 코나와 힐로라는 두 개의 도시가 있다. 코나는 세계 3대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한데 일본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관광지다.

2년 정도 코나에 머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바로 내가 ‘컨트리 걸’, 소위 말해 ‘촌년’이라는 것이었다. 딱히 괜찮은 백화점이 하나도 없기에 많은 학생들, 특히 여학생들이 너무 힘들어했으나 나는 코나가 좋았다.

가끔씩 큰 도시에나 있는 미술관이나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그리울 때 말고는 코나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10분만 걸어 내려가면 부두가 있고 매일 새로운 풍경의 노을이 졌다. 한국에서는 엄두도 못 내는 카멜레온을 만져보기도 하고, 바다 파도에 지친 듯 해변에 누워있는 바다 거북이를 코앞에서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빅 아일랜드였다.

간단한 장비를 갖추고 얕은 바닷속에 들어가 해저 동식물을 볼 수 있는 스노우쿨링이라는 레포츠가 있는데 함께 공부하던 친구를 따라간 적이 있었다.

물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물보다 고기가 더 많을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날에는 내가 물고기들을 구경하러 간 것인지, 물고기가 나를 구경하러 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큰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보는 물고기를 보면서 전에는 몰랐던 넓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었다.

빅 아일랜드는 여전히 화산 활동이 진행되는 몇 안 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눈앞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이 주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었다.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면서 물을 내뿜는 고래 무리를 봤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추억 중 하나다.

‘마우나케아’라는 산에 별을 보러 간 적도 있다. 지구에서 별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산이었는데 그 또한 장관이었다. 밤하늘에 그렇게 수많은 별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친구와 말없이 넋을 잃은 채 멍하니 있던 기억이 난다.

자료사진

나를 성장하게 하는 열린 사고

어릴 때는 미국인이라면 모두 파랑 눈에 노랑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중고등학생 때는 그들을 발랑 까지고 성에 눈을 뜬 좀 이상한 아이들의 집단이라 여겼다.

막상 미국 친구를 사귀어도 깊은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오해가 생기기 십상이다. 속내를 나눠야 사람을 깊이 알 수 있기에 영어를 잘해도 서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미국에서 친구를 사귀면서 제일 놀랐던 점은 무척이나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은 나라가 작고 한민족이라는 민족의식 때문에 비슷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상한 아이라고 평가받으면 모두 그 아이를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미국은 전혀 그렇지않다. 보수적 성향을 넘어 진짜 꽉 막힌 사고를 하는 부모와 사는 백인 친구도 있었고 나보다 훨씬 어린데 아이가 딸려있는 빨강 머리 여자애도 있었으며, 여자의 나이가 9살이나 많은 연상연하 커플도 있었다.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모여서 수군거리며 남 이야기를 해댔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신기했던 것은 그들은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미국 국적의 백인 여성과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남성이 결혼해서 태어난 아이를 보며 사람들은 무척 행복해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오바마 대통령 생각을 했다. 아빠가 아프리카 사람인데 저 아이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나 있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말이다.

나름대로 내가 열린 사고의 소유자이고 어떤 것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대단한 착각일 뿐이었다. 

하와이를 떠나 시카고에 1년 정도 머물 때 게이 커플을 여럿 봤는데, 길에서 딥키스를 하는 그들을 처음 보았을 때는 넋을 놓았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모두가 다른 생각을 하고 평범함을 가장한 특별한 인생을 산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이런 수많은 생각이 나를 조금은 자라게 했는지도 모른다. 

어떤 모습을 한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그들을 웃으며 안아볼 수 있는 가슴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만감이 교차한 인도에서의 자원봉사

자발적으로 떠난 자원봉사가 아니어서 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늘 부끄럽다. 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선교단체가 운영하는 학교였기에 의무적으로 자원봉사를 3개월간 해야 했는데, 네팔과 인도로의 여행은 이런 숨겨진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유럽, 아프리카, 미국 등 여러 나라가 자원봉사 후보지로 물망에 올랐다.

여기에 인도와 네팔도 추천 지역이었지만 그 지역만 아니고는 다 괜찮을 것 같았다. 히말라야로 유명한 곳이 네팔 아니던가. 등산이라면 딱 질색인 나로서는 사양하고 싶은 나라였다.

하지만 얼마 후 마음이 네팔로 끌리고 있음을 깨달았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가방을 쌌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네팔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인도에서 3주 정도 머물렀는데 첫 번째로 머무른 도시는 캘커타였다. 큰 도로 위에 자동차, 자전거, 인력거, 소, 개,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이 동시에 다니는 모습은 가히 혼돈 그 자체였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머물던 일주일 중 이틀은 비가 왔는데, 집을 나서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거대한 강을 보게 되었다. 전날만 해도 큰 도로였던 길은 동물의 배설물과 쓰레기를 싣고 가는 거대한 강이 되어 있었다.

모두가 발을 내딛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을 때, 불현듯 ‘내가 그간 얼마나 편하게 살고 있었던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캘커타에 사는 아이에게는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일상의 한 부분일 이 상황이 내 마음에는 지옥처럼 느껴지던 그 순간,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길이 강이 되었지만 우리는 마더 테레사가 세운 학교로 봉사활동을 가야만 했다. 결국, 온갖 오물이 뒤섞인 흙탕물에 발을 담갔다. 

아무 고민 없이 버스정류장으로 걸으면서 거리를 뛰어다니는 아이의 눈망울은 어쩌면 저렇게 천진할까 하는 생각에 정신을 집중했다.

인도 아이들은 쉽게 다가오고, 안기고, 손을 내밀었다. 아마도 관광객이 관심을 보이면 사탕이라도 하나 더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영특함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떤 거리에 들어서자 영어로 된 안내문이 있었는데, 아이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아이의 자립을 돕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요점의 글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을 한 아이들이 나를 올려다볼 때의 그 간절함은 잊을 수 없다.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하던 그 눈빛도 생각난다.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를 가늠하지 못하겠단 생각이 들던 캘커타의 여름은 너무나도 후덥지근했다.

산골 어린이들이 전하는 소중한 선물

캘커타를 떠난 우리는 홍차로 유명한 인도의 북쪽 지역 다즐링에서 잠시 쉬었다가 ‘실리구리’라는 시골 지역으로 들어섰다. 70도 정도 경사진 산길을 2시간가량 올라 도착한 산 속 작은 마을. 그곳엔 작은 학교가 있었다.

학생 모두가 교복을 입은 학교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집에 다닐 정도로 어린아이부터 초등학교 6학년까지 다니는 종합 교육기관이었다.

그 지역은 손님이 오면 아이들이 목에 스카프나 꽃으로 만든 레이를 걸어주는 것이 풍습이었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은 그것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인기투표를 당하게 되었다. 

처음엔 담담하게 시작했지만 알 수 없는 경쟁의식을 느끼던 우리들은 웃거나 안아주며 아이의 반응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1위는 나였는데, 아무래도 머리카락이 검고 아이들과 닮아 친숙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망울이 커다란 아이들이 웃으면서 다가와 목에 꽃을 걸어주는 기분이란.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듯했다.

우리는 각자 한 과목씩 맡아서 가르쳤다. 영어에 능통하지 않았던 나는 영어를 가르칠 수도 없고, 수학을 가르치기도 어려웠다. 

말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머리를 짜내 생각한 것이 종이접기였다. 종이 바구니를 만들어 가장 소중한 것을 담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자는 것이 수업 목표였다.

눈을 반짝거리며 작은 손으로 삐뚤빼뚤하게 열심히 바구니를 만든 아이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담아 왔다. 꽃잎을 하나하나 뜯어 담아오기도 하고, 예쁜 돌멩이를 담아오기도 했다. 새알을 구해온 아이도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몇몇 아이들은 만든 바구니를 나에게 선물해주었는데 그 마음이 참 순수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돌 사이에 피어있는 꽃, 그리고 작은 새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이런 것에 마음이 설렌 것이 언제였나 싶었다.

아이팟도 컴퓨터도 한 번 본 적 없는 산속의 인도 아이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결국 자연이 전해주는 사소하고도 작은 것이었다.

동화를 쓸 때, 과연 내가 아이들의 정서에 맞는 글을 쓰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이 있다. 디지털의 발달로 동화책보다 컴퓨터 게임을 더 좋아하는 아이에게 숲 속 이야기, 동물 이야기가 흥미를 끌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다.

하지만 그 날, 아이들이 내민 선물은 그런 내게 응원이 되어주었다. 손에 조심스럽게 감싸 쥔 작은 새가 퐁퐁 뛰는 심장을 가졌다며 까르르 웃어 젖히는 아이의 미소는 여전히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있다.

어린이를 향한 나의 마음

사실 오래전부터, 아이들은 나에게 어려운 존재였다. 언제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고, 어떤 변덕을 부릴지 모르는 작은 악마. 아이와 놀아줘야 하는 시간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고통의 순간이었다. 나는 무조건 아이를 돌봐줘야 하는 어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선물 받는지 알게 되었다. 아주 작은 곤충에도 기뻐하고 자신의 상상력으로 평범한 공간을 미지의 세계로 발전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순간 위로받고 웃을 수 있었다.

아이의 미소는 아픈 사람을 낫게 할 만큼 놀라운 힘을 가진 것 같다. 아이들은 먼 미래를 고민하며 살지 않는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어린아이에게 물으면 눈을 반짝이면서 말한다.

“고양이요.”

아이가 고양이가 되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높은 곳에서 잘 뛰어내리기 때문에, 털이 매끄럽기 때문에, 쥐를 잘 잡기 때문에 등등. 아이에게 “넌 절대로 고양이가 될 수 없을 거야”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라. 아이는 어른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다른 곳으로 가 버리거나 혹은 그냥 웃으며 “될 건데!”라고 말할 것이다.

굳이 그 꿈을 깨버릴 필요가 있을까. 그저 그 아이를 꽉 안으며 “어머, 정말 신 나겠다!”라고 말해주면 그만이다. 아이는 현실 속에서 고양이가 될 시간을 기대하며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 슬픈 건 그런 상상조차 펼 수 없는 아이들이다. 바다가 무엇인지 배우지 못해 바다를 모른다면 얼마나 비참한가. 그런 아이에게 책은 세상을 잇는 유일한 통로일 것이다.

인도와 네팔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 짧은 영어로 아이에게 종종 이야기를 지어내 주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나의 영어를 알아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도 눈을 반짝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동물과 세상을 나뭇가지로 그려가며 설명하는 나를 보며 아마 수십 가지 상상을 머릿속에서 그려냈을 것이다.

그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면서, 작가라는 이 직업에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다시 깨달을 수 있었다. 

바짝 다가앉는 아이에게 더 신 나게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순수한 마음의 독자를 가진 동화작가는 다른 그 어떤 직업보다 행복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카고에서의 새로운 도전

하와이에서 2년의 시간이 끝나자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할 순간과 대면해야만 했다. 그때 한국으로 가는 대신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학부 선행학습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카고 근교의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기로 했다. 과정은 참으로 험난했다.

2년 동안 늘어난 두 개의 큰 짐을 우편으로 부치고 시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바다 근처의 시골 촌구석에서 대도시로의 이사였던 탓일까. 오헤어 공항에 내리고, 시내 중심에 있는 기차역까지는 잘 찾아갔지만 문제는 지하철이었다.

몇 블록만 걸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그 지하철역을 찾지 못해서 32도가 훌쩍 넘은 한낮에 두 시간을 넘게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카고에서의 힘든 유학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하와이보다 교통이 편하다지만 시카고에서 위튼으로 이사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 시간에 한 번만 지나가는 버스. 사람들이 자가용 한 대씩은 몰고 다니는 나라가 미국인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슈퍼까지 걸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40분일 정도였다. 어렵게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던 탓에 엄마에게 자동차가 필요하단 말은 입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 독한 감기에 걸린 나는 약을 먹고 푹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감기약을 사러 영하 13도, 심하게는 30도까지 떨어지는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때마침 미시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약을 사러 가야 하는데, 차도 없고 걸어서는 약국이 40분이나 걸려.”

친구는 걱정하지 말라며 내일 아침에는 약을 먹을 수 있을 거라 위로했다. 겨우겨우 잠을 청하고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1층으로 내려갔다.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우체국 아저씨였다. 긴급 우편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박스 안에는 감기약이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얼른 나으라는 친구의 편지와 함께 말이다. 친구의 아이디어에 한 번 놀라고 또 그 따뜻한 마음에 한 번 더 놀란 사건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어려웠던 건, 통계학 수업이었다. 한국어로 해도 어려운 문제를 영어로 풀어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고등학교 때 수학능력시험을 본 후 수학을 풀어본 적도 없었던 내가 다시 수학과 2학년의 미국 학부생과 같이 통계학 수업을 들어야 한다니.

빼곡히 문제가 적힌 페이퍼와 몇 주간 싸우던 나는 결국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해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수학을 잘했던 그 친구는 자신이 먼저 대학 통계학 공부를 하고 인터넷으로 화상 강의를 해주었다. 친구의 도움과 나의 때늦은 학구열 덕에 첫 학기 통계학 수업에서 1등을 하며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가장 재미있는 수업은 아동 발달 심리학 수업이었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어떻게 성격이 형성되는지와 부모와 주변 환경이 아이를 변화, 성장시키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유치원에 가서 직접 아이를 보면서 관찰일기를 써보고 인터뷰를 하는 체험 수업도 있었는데 확실히 미국과 한국의 정서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모든 아이들은 똑같이 애정을 필요로 하고 교육을 통해 바르게 자란다는 사실을 배웠다. 엄마의 등에 업히거나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이들 모두 가장 원하는 것은 한결같은 보살핌이다.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배운 1년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유년기와 아동기를 떠올리면서 내게 결핍되었던 것과 충분했던 것을 가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한 케이스 스터디는 요즘의 아이들이 어떤 것을 원하고 바라는지를 좀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공부 스트레스나 몸이 지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역시 외로움이었다. 하와이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생활을 하던 나에게 긴 겨울과 삭막한 느낌의 도시는 견디기 어려웠다. 매일 울다가 잠드는 일이 수차례, 악몽을 꾸다가 눈을 떠서 한국으로 전화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결국 나는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대학원 선행과정을 마무리 지은 후,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미국 대학원 입학을 2개월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다.                                

동화작가 김혜련 칼럼

깊은 패배감을 안은 채로 돌아온 인천공항에는 친한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척 하려 애써 태연하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2년 만의 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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