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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길위에서 길을 찾다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약속 장소를 찾을 때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다. 약속 장소가 더 큰 건물일수록 범하는 실수이다. 바로 약속장소 앞에서 어디로 가는지를 묻는 다는 것이다.

문 앞에 있는데도 발견 못했을 때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곳이 말이다. 인생에서도 일상에서도 이 같은 우는 계속 범한다. 길이 낯설수록 이런 실수를 할 확률이 훨씬 높다.

낯선 지형 속에 갇히면 판단력이 떨어지게 되고 우왕좌왕하는 마음이 앞서 지형지물을 잘 보지 못하는 수가 생긴다. 사전에 알려준 약도는 무용지물이 되고 자기 판단만이 앞서게 된다.

약도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면 방향이 정해지지 않고 방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손바닥으로 침을 튀겨 방향을 정하는 사람들의 대열 속으로 내가 끼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나 혼자 약속일때는 괜찮다.

생명이라니까 무척 엄숙하고 대단하게 느낄 것이다. 생명까지 안 가고 그냥 여러 명을 끌고 다니는 일을 내가 맡았다고 가정할 때 부담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여러 명을 끌고 다니는 내가 리더가 될 때 아주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다. 대장 노릇하기가 힘든 것은 여러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영화구경을 시켜준다고 나를 믿고 나서는 사람이 있다고 칠 때 극장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나라면 그 사람의 길을 찾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 시간에 도달 못하면 그 시간에 영화를 못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러기라는 새는 대장 새를 따라 방향을 잡는다. 기러기가 나는 모습이 장관인 이유는 여느 새와 달리 줄지어 질서있게 리더를 따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새도 방향을 잡고 그 방향에 따라 난다.

길에 대한 논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좋은 리더를 가지려는 것은 목표에 빨리 정확히 그리고 안전하게 도달하려는 욕심 때문이다.

대장이 똑똑하면 회의도 필요 없고 모임도 필요 없다. 아랫사람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되고 동쪽으로 가라면 동쪽으로, 서쪽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가기만 해도 된다.

유능한 지도자를 만난 사람은 일을 안하고 움직이는 방향으로만 따라가도 복을 누릴 수 있다. 지도자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등산에서 길을 터주는 행위중 '러셀'이라는 것이 있다.

러셀은 등산로가 덮였을 때 앞서 나가 눈을 다지며 등산로를 확보하는 행위이다. 후속으로 오는 사람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러셀은 체력소모가 무척 크므로 교대를 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깊은 눈이 쌓인 곳에서 러셀을 할 때는 선두는 배낭을 벗고 러셀을 하고 후미는 배낭을 들어주는 방법으로 체력소모를 줄일 수 있다. 

러셀을 할 때 눈에 덮인 위험지역이나 낭떠러지 같은 의심스러운 곳은 스틱으로 깊이를 체크하면서 해야 한다. 

러셀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너무 서두르지 말고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눈이 허리 이상 빠질 때는 등산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철수해야 한다.

겨울산에서 과욕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러셀의 시간이 필요할 때인지 그냥 길잡이가 필요할 때인지 길잡이를 찾을 때는 고려해야 한다. 내가 있는 곳이 설산이면 러셀이 필요하다.

먼 길을 가면서 목표도 없이 양쪽 길을 다 가겠다는 욕심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을 길잡이로 택해야 한다. 

길 위에서 가끔 길찾기를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길잡이를 하면 좋을 듯 하다. 러셀은 정말 어려운 길잡이이다. 화려함보다는 힘든 과정이 점철 돼 있다. 때론 누군가에게 자신의 길찾는 역할을 스스럼 없이 넘겨주기도 하면서 가야 한다.

러셀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위험이 많이 수반되는 곳에 필요한 길잡이다. 길잡이를 택할 때 중요한 것은 처한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과정, 주변에 대한 인식들이다.

프로스트가 말한 함의는 간단하다. 다리가 네 개 있어도 두 길을 함께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길만 열심히 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멀티'라고해서 그 이상 일을 하기 원하고 그런 사람을 능력자로 우대한다.

길잡이를 잘못 만나면 힘든 여로가 예상된다.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에서 인생에서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다"고 가르쳤다. 살면서 두 길을 간다는 것은 어렵고 불가능하다는 점을 우리는 점점 깨달아 간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여러 일을 하도록 두지 않는다. 억지로 관철시켜 봐야 펑크가 나고 불완전한 완성이 기다리고 있다.

먼 약속들 거창한 약속들은 여러 일을 동시에 한다고 되어 있다. 또는 이 일을 하면 저일이 안 될 터인데 그러고도 한다고 한다.

이치에 맞지않는 논리임에도 사람들은 혹하고 또 혹한다. 현혹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순서대로 절차대로 길찾기를 하는 사람이, 그걸 안내하는 사람이 왕도라는 점을 말이다.

사람이 녹여 진 에밀레 종소리는 깊고도 청아하다고 한다. 그건 소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감동이다.

그런 감동을 길에서 재연하려면 길잡이가 녹아 길이 되는 수고 쯤은 각오 해야 한다. 그것이 길이고, 그것이 길잡이고, 그것이 왕도다.

심우일 기자  press@cbc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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