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장바구니 물가가 치솟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상식 이상의 물가 인상은 따지고 봐야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러한 환경을 기회로 보고 실적 방어는 물론 실적 상승의 타이밍이라 보면서 잽싸게 가격 인상 대열에 나서는 업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적정가 이상 올린 것이 아니냐고 따지면 최저임금에 원자재·식자재 인상, 임대료 상승 등 똑같은 레퍼토리가 주르륵 펼쳐진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업체일수록 포식을 하고 배를 두들기는 배부른 사자였음을 매년 사업보고서가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안타까운 건 이러한 시류가 전방위로 확산되는 것이다. 가격이 오른 품목보다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다. 마치 올리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가계의 소비를 높이겠다는 현 정부의 구상도 무용지물이 돼버리는 수순이다.
안타깝게도 서민경제에 갈수록 악영향을 주는 흐름이나 정부의 물가관리 의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장의 가격 책정을 인정하겠단 자율성 존중의 태도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가 그렇게 강조한 소득 주도 정책에서 해석한다면 초점에서 벗어난 방관이다.
지금은 물가 상승뿐만 아니라 고용까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고용이 어려워지면 가계소득은 자연스레 감소한다. 최악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이 허공의 메아리로 묻혀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올 1분기 하위 20%(1분위) 가계의 명목소득은 월평균 128만6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줄어들었다. 반면 상위 20%의 소득은 약 1015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3% 늘어났다. 두 그룹의 격차가 무려 8배에 달하는 심각한 양극화를 나타내고 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물가 관리에 발 벗고 나서야만 할 때다. 어느 정권이나 물가가 안정되지 못하고 서민의 주름살을 파이게 한다면 절대 지지를 받을 수 없다. 현 여권의 정체성이 서민에게 나온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제5공화국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활약한 김재익 수석의 행보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고(故) 김 수석의 대표 업적은 물가 관리다. 지금도 전두환 정부의 대표 치적으로 언급될 만큼 철저한 물가 관리로 서민경제의 안정화를 도모했다.
1980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28%였던 것이 1982년 7%, 1983년부터는 3.5%를 넘기지 않을 정도로 저물가를 유지했다. 어찌보면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이 심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김 수석은 저물가 기조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기업과 시장에 대한 심판 역할을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소위 ‘카지노판’이 돼버린다는 인식이었다.
이를 반측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까지 감행하겠단 일명 재벌주의의 반감도 존재했다. 지금의 공정거래법과 비슷한 맥락일지 모른다. 결국 김 수석의 저물가 기조는 근로자의 임금을 당장 크게 올려줄 순 없어도 물가 상승을 억제하면서 근로자들의 실질임금을 보장해주겠다는 뜻을 내포했다.
김 수석의 전략은 경제성장률로 돌아왔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해도 1980년 -3.7%에서 1983년 12%대의 유래가 없는 성장률은 서민경제의 안정화가 분명 주춧돌 역할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산층의 부흥이 다시 오지 않는 이상 과거의 호황기는 절대 누리지 못할 것이라 강조한다. 비핵화를 위한 외교도 중요하고 미래 먹을거리 개발을 위한 투자도 좋다. 그러나 중산층이 무너져가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작금의 모습은 만사를 제쳐둬야 한다. 우선순위를 절실하게 따져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