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휴대폰 서비스가 시작된 지 7월 1일로 30주년을 맞았다.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이 지난 1988년 7월 1일 아날로그 방식 기술을 이용해 첫 선을 보인 것이 국내 휴대폰 서비스 시초다.
무게가 771g인 국내 첫 휴대폰인 일명 ‘벽돌폰’은 5.5인치 스마트폰 4개 이상을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였다. 벽돌폰 가격은 당시 약 400만 원이며 설치비 60여만 원까지 포함하면 1988년 서울 일부 지역의 전셋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이후 기술 개발에 힘입어 가격은 낮아지고 성능은 좋아지면서 가입자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1988년 784명에 불과했던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1991년 10만명, 1999년 20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2010년에는 5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수(당시 기준 4960만명)를 넘어섰다. 올해 4월 기준으로 6460만 명에 달한다. 그동안 이동통신 기술은 1996년 2세대 CDMA(무선분할다중접속), 2003년 3세대 WCDMA, 2011년 4세대 LTE로 진화했다.
사치품이었던 휴대폰 서비스가 보편화된 이면엔 ‘세계 최초 신화’들이 숨어있다. SK텔레콤은 1996년 세계 최초 CDMA 상용화, 2002년 세계 최초 CDMA 2000서비스 상용화, 2013년 세계 최초 LTE-A 상용화를 이뤄냈다. 내년 3월에는 최대 다운로드 속도가 20Gbps에 달하는 5G 서비스가 상용화될 예정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5G가 2035년까지 12조3000억 달러(약 1경3700조 원)의 경제효과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세계 첫 휴대전화는 1973년 모토로라의 마틴 쿠퍼 박사가 개발한 ‘다이나택’이다. 모토로라는 이 장비를 경찰에 제공했고 경찰차에 장착하는 카폰 용도로만 사용됐다.
이후 1983년 모토로라가 출시한 ‘다이나택 8000X’이 세계 최초 상업용으로 승인받으며 휴대전화 시장의 서막을 열어젖혔다. 당시 다이나택 8000X의 가격은 3995달러(446만 원)로 부의 상징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794g의 무게에 8시간 충전, 4시간 연속 대기에 30분 정도만 통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통신 기술은 물론 하드웨어까지 지금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로 낙후된 수준이었다.
모토로라는 1989년 세계 최초의 플립형 휴대전화 마이크로택 9800X을 출시하면서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선다. 이 제품은 국내에서도 판매가 됐다. 바(bar) 형태의 휴대전화 디자인을 벗어난 최초의 플립(flip)폰이다.
플립 형태의 키패드를 덮는 커버를 만들어 사용자가 원치 않는 키 오작동을 막았다. 그러나 가격을 많이 낮췄음에도 2495달러는 가격 저항선은 대중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모토로라의 독주 태세였던 휴대전화 시장은 1992년 등장한 노키아의 1011폰으로 시장의 양분화가 이뤄진다. 2세대 통신인 GSM 방식의 사용한 1011폰은 대중화를 앞당긴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액정이 달린 휴대폰으로 대기시간 12시간에 통화 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이전보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을 이뤄냈다.
모토로라는 노키아의 도전을 무위로 돌리는 듯 1996년 스타택(StarTAG)을 출시했다. 스타택은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한 획을 그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전 세계 누적판매량 6000만 대를 돌파할 정도로 휴대전화 시장의 글로벌화를 앞당겼다.
1994년에는 IBM이 세계 최초 스마트폰 시몬을 공개했다. 그러나 당시 대중화가 한창인 시절이라 시몬은 이렇다 할 반향을 보이지 못했다.
1996년에는 노키아가 세계 최초의 슬라이드폰인 노키아 8110폰을 출시했다. 이 휴대폰은 1999년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해 ‘매트릭스 폰’이란 애칭까지 들었다.
이후 휴대폰 시장은 고화소 카메라 탑재 기능부터 ‘스윙폰’, ‘가로본능폰’ 등의 디자인 경쟁, 3G 구현 등 업그레이드 통신 기술의 발전 등 각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이 이어졌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의 스티븐잡스가 아이폰 1세대를 내놓으면서 휴대전화 시대는 마침표를 찍고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갔다. 당시 미국 언론은 아이폰을 두고 “애플이 전화기를 재발명하다”란 평가로 시대를 바꿔버린 희대의 발명품이란 찬사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