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박주선(바른미래당) 국회의원실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블록체인 민관 입법협의체 출범식 및 토론회’에서는 정부 당국의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종근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검사)과 송현도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과장은 허가형(프라이빗) 블록체인 활용성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암호화폐는 단지 투기 수단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정책보좌관은 “암호화폐는 온라인상에서 문자열로 구성된 증표에 불과한 금과 금융상품과 동일한 가치를 지닐 수 없다”며 “업체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6000만 원 정도만 있으면 누구나 암호화폐를 발행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만든 증표로 가치를 담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계자도 현재의 암호화폐 대부분이 사라질 것이라 한다”며 “정부가 이에 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암호화폐 규제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 정부는 암호화폐에 대해 전면금지 정책을 펴고 있어도 중국 업체들은 블록체인 특허수가 매우 많다”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따로 접근해도 충분히 (산업육성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송 과장은 “금융위는 블록체인 육성에 있어 암호화폐 내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금융권의 실제 활용 사례도 블록체인에 집중돼있고 블록체인에 암호화폐를 계속 묶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좀 더 이성적으로 말씀하셨으면 한다”고 부정적 인식을 명확히 했다.
긍정적 부분 간과하지 말아야
전문가들은 정부 당국 관계자의 이같은 인식을 두고 현재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에 뒤쳐질 수 있는 정책적 오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암호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의 결정체라 볼 수 있을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핵심 산업군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이를 별개로 생각하는 것은 마치 원자력 기술이 핵폭탄의 위험성을 안고 있으니 사용하지 말자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미 스위스의 주크는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개방적 정책으로 인해 양질의 일자리를 대거 창출하고 자본 유입 등으로 상당한 경제적 혜택을 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암호화폐 산업을 적극 지원하는 싱가포르도 마찬가지다.
업계 일각에서는 최근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의 해외 진출은 정부의 이같은 기조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1위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내달 싱가포르에 거래소를 오픈할 예정이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는 현재 정부 규제 등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않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지금 기회를 놓치면 성장 궤도에 오르지 못한다는 시각”이라고 밝혔다.
정부 육성책을 펴는 싱가포르에 진출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면서 자유로운 공간에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보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두나무는 싱가포르에 그치지 않고 다른 국가도 진출할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돌파구 찾는 암호화폐 거래소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해외 진출은 업비트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코인원은 지난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코인원 인도네시아’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네이버 자회사인 라인은 지난 7월부터 싱가포르에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를 오픈했다. 빗썸 역시 올 초 영국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태국, 일본에 법인을 설립하고 운영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각이 만연한 이상 우리나라가 블록체인 기술을 리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더라도 이를 대중에 선보일 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정부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정부의 강한 반감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라 대비는 물론 어떠한 투자도 섣불리 할 수 없는 상태”라며 “국민 앞에서는 신산업 확대를 통해 혁신성장으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규제 개혁을 외치지만 뒤편에서는 규제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고 있으니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 모습에 허탈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학계에서는 암호화폐 산업에 대한 정부 당국의 진중한 검토가 이뤄져야한다는 시각이다. 분명 암호화폐 시장의 부정적 면은 존재하나 해당 산업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면을 간과한다면 지키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다는 지적이다.
박수용 서강대 교수는 “새로운 기술이나 산업은 기존의 산업과 충돌하면서 초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 시킬 수 있으나 역사의 수많은 사례가 증명하듯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통해 변화는 성숙해지고 사회나 조직은 한 발짝 더 발전하는 계기가 만들어진다”며 “갈등과 충돌을 두려워해 새로운 것을 무조건 금지시키자는 생각으로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시대에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명이란 그야말로 혼동과 충돌의 현상이고 이를 먼저 체험하고 극복하는 집단이나 기업이 우위를 점하는 시대를 칭한다”며 “무조건적인 금지 정책보다 앞서가는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서 이를 건전하게 육성시킬 제도적인 정비와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