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적 비용이 걸린 애플과 퀄컴의 모뎀 칩 로열티 분쟁이 갑작스런 화해로 끝났습니다. 애플은 5G 상용화로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 경쟁사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소송으로 인한 출혈이 매우 크다는 판단입니다.
16일(현지시간) 블룸버그와 CNBC 등 미국 주요 매체들은 애플과 퀄컴이 소송을 끝내기로 전격 합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양사는 15일부터 소송에 들어가 배심원 선정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공판을 앞두자마자 합의 소식을 전해 IT공룡들의 연이은 공방전은 위협 사격만 주고 받는 결말을 맺게 됐습니다.
양사의 소송은 지난 2017년 1월 애플이 제소하면서 도화선에 불이 붙었습니다. 퀄컴이 표준특허 라이선스를 위반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퀄컴도 그해 4월 계약 위반 혐의로 반격에 나섰습니다.
퀄컴이 제소에 나서자 애플은 로열티 지불 중단이라는 연이은 강수로 맞섰습니다. 퀄컴은 그해 5월 아이폰 외주생산업체들을 제소하며 재반격에 나서는 등 힘겨루기가 펼쳐졌습니다.
애플은 이번 소송에서 퀄컴의 필수표준특허 라이선싱을 문제 삼았습니다. 일부 기술 특허를 빌미로 스마트폰 전체 가격을 기준 삼아 특허료를 징수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주장입니다. 퀄컴에 특허료 징수에 대한 270억 달러(약 30조6045억 원) 배상을 요구했습니다.
퀄컴은 애플이 계약을 위반했다며 150억 달러(약 17조25억 원) 배상으로 맞불을 놨습니다. 애플 최대 위탁업체 폭스콘을 비롯한 외주생산업체들이 퀄컴에게 지불해야할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주지 말 것을 강요한 점도 포함시켰습니다. 여기에 퀄컴과 계약 기간에 취득한 영업 비밀을 경쟁사인 인텔에 흘렸다는 주장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정면 돌파가 예상됐던 양사의 싸움은 6년 간 라이선스 계약을 맺는 조건으로 타협이 됐습니다. 6년 계약이 끝나면 양사가 2년 연장을 추가로 요청할 수 있는 조건도 추가로 걸었습니다.
로열티 액수는 비공개지만 애플은 퀄컴에 일시불로 로열티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양사의 합의는 이달부터 적용됩니다.
한편 애플은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퀄컴과 모뎀 칩 공급 계약을 맺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2017년부터 시작된 소송전에 애플은 지난해 출시한 아이폰 새 모델에 인텔 모뎀 칩으로 갈아탔습니다.
애플의 최신 모델인 ‘아이폰XS’ ‘아이폰XS맥스’ ‘아이폰XR’에서도 인텔 모뎀 칩만 사용했고 자체 개발에도 나서는 자구책을 모색하기까지 했습니다.
관련 업계는 애플이 5G 아이폰 출시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인텔의 5G 모뎀칩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는 해석입니다. 당초 2020년으로 예상됐던 5G 아이폰 출시가 2021년까지 미뤄질 수 있다 보고 백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2021년에 5G 아이폰이 출시되면 이미 올해부터 5G폰 출시에 나서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화웨이 등에 크게 뒤쳐질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이번 합의로 5G 아이폰 출시는 예정대로 2020년에 가능할 것이란 진단입니다.
한편 애플은 최근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공급을 요청했으나 삼성전자는 양산 물량 부족으로 공급이 어렵다고 답했다는 전언입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화웨이는 애플에 5G 모뎀칩을 공급할 수도 있다는 제스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결국 5G 시대의 이해관계가 애플의 굴복을 이끌어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