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다양한 산업의 융합형 서비스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본 시장의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거대 자본과의 전략적 제휴가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 당국의 지원 사격도 곁들여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는 공동출자회사 모넷 테크놀로지를 설립해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양사는 차세대 모빌리티 비즈니스를 위한 공동 협력을 골자로 자본금 20억 엔(약 209억 원)을 출자했습니다. 소프트뱅크 50.25%, 도요타자동차 49.75%의 지분 비율입니다.
일본 시가총액 1위와 2위 기업이 공동 협력에 나섰다는 점은 세간의 주목을 이끌기에 충분한 이슈지만 자동차와 통신이라는 양사 주요 사업의 융합이 더욱 큰 이슈입니다.
도요타는 그동안 자율주행차를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다양한 콘셉트카를 선보였습니다.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고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각종 생활 서비스를 연결하는 인프라 핵심으로 발돋움할 것이란 확신입니다.
소프트뱅크도 모빌리티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세계 최대 모빌리티 기업인 우버의 최대 주주며 그랩, 디디추싱 등 주요 모빌리티 기업에도 자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도요타와 덴소의 자율주행 자동차에 10억 달러(약 1조1700억 원)의 추가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모넷 테크놀로지가 지향하는 사업은 언제 어디서든 소비자가 원하는 곳으로 달려오는 자율주행차입니다. 예컨대 사용자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원하는 장소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무인자동차가 자동으로 배치됩니다.
특히 이동 수단만 제공하지 않고 식음료 구입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겐 자동차 편의점을 제공하고, 병원 진료를 원하는 이들에겐 자동차 병원을 배차합니다. 이동 수단에 특화된 기능을 입혀 모빌리티 산업이 생활 깊숙이 녹아들 수 있도록 인프라 혁명에 나서겠단 목표입니다.
이동이 어려워 병원 진료에 제약을 받는 환자들은 자동차 병원을 통해 진료 편의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병원 인프라 구축이 열악하거나 고령층도 자동차 병원으로 쉽게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모넷은 이미 자동차 편의점을 올해 안에 선보인다는 목표입니다. 2023년에는 자율주행 서비스를 본격화할 방침입니다. 도요타는 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일본의 모빌리티 산업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자 자율주행차를 이용해 각국 선수단을 실어 나른다는 계획입니다.
모넷은 다양한 모빌리티 서비스가 단순히 기업 이익 증대에 그치지 않는다는 설명입니다. 교통사고가 없으며 보다 빠르고 편리하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교통 인프라의 패러다임을 뒤바꾸는 혁신이라 강조했습니다.
경쟁사가 모넷에 속속 합류하는 모습도 흥미로운 점입니다. 올 3월 도요타의 경쟁사인 혼다와 히노자동차가 모넷의 자본 투자에 나섰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산업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선 업계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는 의기투합입니다.
모넷 컨소시엄에는 현재 88개 업체가 참여하는 대단위 공동 전선이 형성됐습니다. 참여 기업들은 의료부터 금융, 유통, 관광, 부동산 등 모빌리티 사업과 융합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입니다.
한편 일본의 이같은 움직임은 모빌리티 사업이 정체에 놓인 우리나라 시장에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 등이 글로벌 모빌리티 산업을 주도할 때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본력이 뒷받침된 대기업들이 앞장서 시장 활성화와 개척에 심혈을 기울이자 단숨에 경쟁력을 확보한 모습입니다. 정부 당국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탄력이 붙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택시업계와 모빌리티 업체의 극한 갈등이 지속된데다 정부 당국은 중재자 입장에 국한되면서 해당 산업이 장벽에 막혀 있는 모습입니다. 대기업들도 골목상권 침해라는 부정적 이슈에 몸조심을 하면서 해외 모빌리티 업체 투자에 나서는 등 우회적 방법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현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먹을거리를 발굴하기 위해선 단순히 골목상권 화두에서 벗어나 미래 발전 가능한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며 “자율주행과 커넥티드는 중요하고 모빌리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정책 일관성에서 한참 떨어지고 성장을 가로막는 적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