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구글과 제록스, 페덱스는 기업명인 동시에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일반 명사와 동사로 통용된다.
예컨대 ‘구글해서 보고서를 작성해 달라’는 말은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정보를 취합해 보고서를 작성해달라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제록스는 복사, 페덱스는 편지나 물건을 보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러한 사례들은 기업 브랜드 파워가 얼마만큼의 힘을 지닐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역시 일회용 밴드의 대명사인 ‘대일밴드’나 국민메신저로 등극한 카카오톡의 ‘카톡’도 일상생활에 깊숙이 침투한 브랜드 파워를 확인케 해준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업 브랜드의 통용이 꼭 긍정적인 의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닥의 경우 필름의 대명사에서 도태의 대명사로 철저하게 전락한 사례다. 어느 특정 기업을 지칭해 ‘코닥이 됐다’는 말을 쓴다면 옛것만 고집하다가 철저히 망해버렸다는 치욕스러운 의미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정부법무공단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ICO 금지 방침 등 위헌확인 소송(사건번호 2018헌마1169)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전부터 정부당국이 ICO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던 터라 그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만 과연 헌법재판소에 소송까지 내야할 정도로 중대한 사안인지 궁금한 장면이다.
해당 소송은 ICO가 자본시장법 요건 충족이 힘들고 각종 범죄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위험성, 암호화폐를 재산권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 등을 다루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4차산업혁명의 키워드라며 적극 지원해야한다는 부흥론과 블록체인 기술의 추진체 역할을 하는 암호화폐는 터부시해야 한다는 탄압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안타깝게도 정부당국의 의지와 달리 현재 글로벌 암호화폐 시장은 블록체인 기술과 연계해 금융 산업은 물론 전 산업의 혁신으로 지목되는 중이다. 뉴욕증권거래소와 글로벌 IT기업 다수가 손잡고 출범하는 비트코인 선물 거래소 ‘백트’(Bakkt)와 삼성전자 스마트폰 갤럭시 시리즈의 암호화폐 지갑 탑재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상용화 움직임을 목격할 수 있다.
최근 국내 암호화폐 시장은 아우성이다. 규제 미비를 파고든 신생 거래소의 각종 사기 사건에다 ‘먹튀’를 노린 가짜 코인이 횡행하고 있다.
건실한 거래소들 마저 가상계좌를 발급받지 못해 신규 회원 유치에 애를 먹고 있다. 임시방편으로 쓰는 ‘벌집계좌’마저 회수한다는 날벼락 소식까지 들린다. 업계 일각에서는 방관과 몽둥이로 철저하게 망하길 바라는 정부의 획책이란 말까지 나온다.
관련 업계는 지난 2017년 업비트와 빗썸 등이 거래량 1, 2위를 다투던 시기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매우 큰 변화가 있었을 것이라 안타까워한다. 단순히 암호화폐 거래소가 고꾸라진 것이 아닌 국내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반에 악영향을 끼친 것이 큰 타격을 줬다는 인식이다.
몇 년 후 크립토 시스템이 전 세계를 휩쓸 때 현 정부는 뭐라 말할 것인가. 현 정부가 나중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코닥스럽게’ 만든 주역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균형과 절제가 필요하다. 감정적인 대입을 자제하고 판세를 냉정하게 바라보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