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 중독 질병코드 도입이 국내 게임 업계는 물론 전 세계 게임 시장의 암초로 다가왔다. 해당 이슈로 인한 불안 심리가 크게 작용하면서 주식 시장의 게임주들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모습이다.
단순히 주식 시장 하락장에만 그친다면 다행일 노릇이나 국내 게임업계의 수출 전선에 커다란 악재로 작용해 심각성을 더한다. 그동안 한류 콘텐츠 산업을 지탱하던 핵심축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이미 관련 업계는 WHO 결정으로 국내 게임 산업이 앞으로 3년간 최소 11조 원 이상의 경제적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을 내놨다. 게임 산업의 일자리 감소 등 직접적인 영향도 크겠지만 이와 촘촘히 연결된 밀접 산업까지 타격을 받게 된다면 경제적 손실은 막대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관련 부처는 옥신각신하는 모양새다. 실리를 취하면서 부정적인 측면을 해소하는 현명한 자세를 취해도 모자랄 판에 흑백논리에 함몰된 모습이다.
보건복지부는 WHO 방침 수용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간단히 정립될 문제가 아니건만 일단 수용한 뒤 다음 행마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게임 업계는 과거 셧다운제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피폐함을 절절히 호소한 바 있다. 그럼에도 당국의 일방적인 힘자랑이 실현되면서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는 중이다.
WHO의 결정을 받아들이면 게임 산업은 당장 게임세 도입이란 현실적 장애물에 부딪친다. 글로벌 수출도 각종 규제에 더욱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다. 경기력 향상을 위해 더 가벼운 소재의 유니폼을 입고 뛰는 운동선수가 갑자기 모래주머니를 달고 뛰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부는 실리 우선주의에 입각한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WHO의 이번 결정이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더욱이 게임 한류의 명성을 과거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중국과 미국 등 경쟁국에 자리를 내준 경험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여성가족부가 오는 2021년까지 연장에 나선 셧다운제의 실효성도 거론돼야 한다. 이미 셧다운제의 실효성은 미미한 것으로 판명난지 오래다. 그럼에도 주관적 감정에 사로잡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후대에 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아울러 정부는 뿌리에 어긋난 모순된 가지를 뻗치지 말아야 한다. 4차산업혁명을 부르짖으면서 핵심 콘텐츠인 게임 산업을 터부시하는 것이 이러한 모순에 해당한다. 비단 게임산업만 그럴까. 블록체인 기술을 장려하고 국가 경쟁력으로 삼겠다고 말하면서 블록체인 생태계를 떠날 수 없는 암호화폐를 투기라 규정한다. 크나큰 모순이다.
현재 게임 산업은 국내 콘텐츠 산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보편적 여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중독성 도박과 중독성 마약과는 엄밀히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