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없이 고전도성 실리콘 음극재를 생성해 고속충전·고용량 배터리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돼 이목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해당 기술이 관련 산업에 접목된다면 리튬이온전지의 용량을 크게 늘리고 충전속도도 빠르게 하면서 더 멀리 가고 급속 충전까지 가능한 전기차 개발에 일조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준희 교수팀과 포항공과대학교(POSTECH) 화학과의 박수진 교수팀이 ‘저온에서 황이 도핑된 실리콘을 합성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3일 밝혔습니다.
우선 전기차 배터리의 용량과 충전 속도를 높일 소재인 실리콘이 사용됐습니다. 실리콘은 기존 음극 소재인 흑연보다 10배 이상 용량이 큽니다. 연구진은 실리콘의 전기 전도도를 높이기 위해 1% 불순물을 첨가하는 도핑(Doping)을 해결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음극 소재로는 전기 전도도가 높은 흑연이 널리 쓰입니다. 그러나 흑연은 이론적 용량 한계에 부딪쳐 대체 소재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그동안 실리콘이 대체 물질로 언급됐지만 전기 전도도가 낮다는 단점과 충·방전 시 부피 변화가 커서 잘 깨질 수 있다는 안전상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박수진-이준희 교수팀은 이러한 실리콘의 단점을 해결하는 ‘1% 도핑법’을 개발했습니다. 저온에 대량의 실리콘 입자에 황을 도핑하는 방법을 고안한 것입니다. 해당 방식으로 합성된 반금속 실리콘은 탄소 없이도 전기 전도도가 크게 향상돼 고속충전을 할 수 있습니다. 기존에는 실리콘의 전도도를 개선하고자 탄소를 섞는 방법이 동원됐으나 그럴 필요가 없어진 셈입니다.
해당 기술로 만든 반금속 실리콘은 내부에 황 사슬도 길게 도핑되면서 리튬 이온의 확산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실리콘과 황 원자, 또는 황 사슬이 치환되면서 전기 전도도와 리튬 이온 확산속도를 모두 높일 수 있습니다. 연구진은 고속충전이 가능한 고에너지 배터리 개발에 이상적인 물리적 성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에 게재됐습니다.
공동 제1저자인 서지희 UNIST 석사과정 연구원은 “실리콘 구조를 전혀 변형하지 않고 도핑이 가능하다”며 “상용화된 리튬 이온 배터리 평가 조건에서 검증한 결과 10분만 충전해도 흑연의 4배 이상 용량을 유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공동 제1저자인 류재건 POSTECH 연구원은 “기존 공정은 복잡하고 비싸며 불안정성이 높아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 않았으나 이번 연구로 반금속 실리콘을 손쉽게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류재건 박사는 “반응 시작부터 황을 도입하는 방식을 사용해 실리콘 입자에 균일하게 황을 도핑하는 데 최초로 성공한 결과”라며 “이 방식이 사용된 합성된 반금속 실리콘은 전기 전도도가 50배 이상 향상돼 고속충전이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준희 UNIST 교수는 “반금속 실리콘 소재는 탄소 도움 없이도 빠르게 충전되고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음극 소재의 특성을 확보한 최초의 기술”이라며 “단 1%의 도핑으로 실리콘 전극이 가진 거의 모든 문제점을 해결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박수진 POTECH 교수는 “이 기술은 배터리 소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광전자 응용 분야를 비롯한 다양한 에너지 소재 산업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연구 성과를 높이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