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돌파하고자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5일 일본 정부에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할 경우 일본 경제가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입장 변화 없이 기존대로 수출 규제 강화에 나설 전망입니다.
관련 업계는 정부가 단기간에 사태 해법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보고 자구책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일본으로 직접 건너가 소재 긴급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6일에는 김동섭 SK하이닉스 대외협력총괄 사장이 일본행에 올랐습니다. 협력사를 방문하기 위한 목적이라지만 삼성전자와 비슷하게 소재 물량 확보 차원으로 추정됩니다.
국내 반도체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우선 해외 공장을 통한 우회적 수입과 대체 수입처 발굴 등이 유력한 수단이라는 진단입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재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겠단 계획입니다. 정치적 이슈에 따라 언제든 리스크가 찾아올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최소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국산화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지입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의 빌미가 된 일본 은행의 단기 외채 회수와 비슷한 패턴의 보복조치가 아니냔 주장도 나옵니다. 실제 1997년 11월 일본 엔화 차관이 대거 빠져나가면서 순식간에 외환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단기 외채는 금리가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은행들이 만기 연장을 해주지 않을 경우 부도를 맞을 수 있다는 고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 금융기관과 대기업 대다수는 단기로 돈을 빌려왔습니다. 만기를 지속 연장하면서 돈을 갚아나가고 단기로 돈을 빌리는 패턴을 지속한 것입니다. 일본이 자금을 단숨에 회수할 것이란 최악의 상황은 염두에 두지 않다가 철퇴를 맞은 셈입니다.
일본 은행들이 돈을 몽땅 빼내가자 미국과 유럽계 은행들도 단기외채 회수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지금도 세계 금융사에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짧은 기간에 이뤄진 외국 자본의 ‘대탈주’입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의 이러한 움직임이 정치적 목적이 다분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지난 1995년 11월 김영삼 대통령과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에서 나온 발언이 화근이 됐습니다.
김 대통령은 장 주석에서 “난징대학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장 주석은 “어렸을 때 직접 본 일이며 일본은 그런 일 없었다고 잡아뗀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김 대통령은 “일본 정치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응수했습니다.
훗날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김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의 IMF행 빌미를 줬다고 주장했습니다. 김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후 일본 정치계는 긴급회동에 들어갈 정도로 심각한 사안으로 규정하며 경제보복을 치밀히 준비했다는 주장입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건을 단순히 반도체 산업에 타격을 주려는 으름장 정도로 생각해선 안 된다”며 “역사적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본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경제대국으로 경제 관계는 실리를 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민족주의와 반일정서는 일부분 이해 가는 측면도 있으나 실질적으로 전략의 부족이자 지혜의 부족”이라며 “세계 처음이자 마지막인 원폭 국가 일본이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굴욕 외교까지 마다하지 않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