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제한과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제외 등 연이은 경제 보복을 두고 우리 정부가 소재 부품 등 전략품목의 수입선 다변화와 자체 조달 등 ‘탈일본’을 선언했습니다.
100개 전략품목을 선정하고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투자에 나서는 등 핵심기술의 조기 확보를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입니다.
그러나 다수 전문가들은 짧은 기간 내 체질 개선을 이뤄내기 쉽지 않을뿐더러 산업계가 주도하는 개선이 아닌 정부 주도로 꾸려지면서 구조적 문제에 부딪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5일 정부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하고 100개 소재·부품 전략품목에 집중 투자한다고 밝혔습니다. 20대 품목은 1년 내 자체 조달 및 수입선 다변화를 꾀하고 80대 품목은 5년 내 공급안정화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이번 일본 경제 보복으로 드러났듯 소재부품장비산업은 외형적인 성장과 무관하게 주요 핵심품목들은 특정국가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황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방향을 틀어버릴 경우 산업 자체가 단숨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습니다.
산업계는 취약점을 모른 것이 아니지만 낮은 단가와 기술력의 차이 등으로 기존 체계를 고수한 결과가 이번 경제보복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단입니다. 정부 조사 결과 지난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소재·부품·장비 자체조달률은 60%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더욱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은 자체 조달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주력산업 품목 공급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 안정화시키고 전략적 핵심품목에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전체 7조8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직간접적으로 29조 원의 금융 지원 예산도 꾸릴 계획입니다.
또한 ‘소재부품장비 강국 도약을 위한 제조업 르네상스 실현’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다각적인 공급 안전성 조기 확보 △수요·공급기업, 수요기업 간 건강한 협력모델 구축 △강력한 추진 체제를 통한 대대적인 지원 등을 실현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가마우지와 펠리컨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가마우지는 물고기를 잡아봤자 삼키지 못해 실속이 없지만 펠리컨은 자기 입 안에서 새끼를 키우고 크게 만들 수 있을 만큼 든든한 기반을 만들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계획이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대대적인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예산 투입의 실효성이나 기업들이 기술 개발에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는 환경 마련이란 세밀한 시각은 보이지 못했다”며 “일본과 독일 등 우수한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국가들이 어떻게 그 반열에 올랐는지 벤치마킹이 부족하다”고 아쉬움을 전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부 주도형 산업 계획은 개발도상국에서나 유효할 뿐 지금의 우리 환경에서는 시대적 착오”라며 “예산이 문제가 아닌 첨단 기술 확보에 장애물로 작용하는 규제가 무엇인지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