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제외한다고 7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날 관보를 통해 지난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한국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방침이 담긴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습니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관보에 따르면 개정안은 공포 후 21일이 경과한 후부터 효력을 발휘합니다. 이달 28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셈입니다.
일본 정부가 시행하는 화이트리스트 제도는 기업들이 군사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높거나 자국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전략물자 수출 시 정부 허가를 받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화이트리스트에 속한 국가들은 최초 허가 후 3년간 개별 신청을 면제해주는 등 수출심사에서 우대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그간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지정돼왔고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총 27개국이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분류됐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포함됐습니다. 일본이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시행한 이래 지정된 국가를 탈락시킨 사례는 한국이 처음입니다.
이번 조치로 한국에 1194개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수출기업들은 수출에 나설 때마다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수출 절차가 한층 까다로워지면서 일본 기업들이 대(對)한국 수출을 꺼릴 수밖에 없고 일본 정부가 일정 물량 이상의 수출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공개된 포괄허가취급요령에는 개별허가만 가능한 수출품목이 추가되지 않아 경제보복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기존 일본 정부가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추후 상황을 지켜보면서 개별허가 품목을 결정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됩니다.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 지정에 나서지 않으면서 당장은 경제보복으로 타격을 받는 기업들은 반도체 업체들로 한정됐습니다.
이날 일본 경제산업성은 특별일반포괄허가제도의 유지 방침도 밝혔습니다. 특별일반포괄허가제도란 일본 정부가 수출 관리가 잘 된다고 인정한 일본 수출기업에 개별허가를 면제해주는 제도입니다. 3년 기간으로 재심사를 받습니다. 중국과 대만 등이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음에도 전략물자 수입에 큰 차질을 받지 않는 것은 해당 제도 덕분입니다.
그러나 경제산업성은 특별일반포괄허가를 유지하지만 군사적 용도로 이용되거나 핵무기 개발 등에 사용될 우려가 있다면 포괄허가 효력이 없어지는 3가지 변경사항을 첨부했습니다.
이밖에 일본 정부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에 나서면서 백색국가라는 표현을 ‘그룹A’라는 명칭으로 변경했습니다. 전략물자 수출규제에 대해 ‘백색국가’와 ‘비백색국가’ 두 부류로만 나눴다면 이를 좀 더 세분화해 A~D 4개그룹으로 재편한 것입니다. 한국은 B그룹에 포함됐습니다.
A그룹은 일본이 전략물자를 수출할 때 3년 단위 일반포괄허가가 가능한 국가며, B그룹은 수출 통제 체제에 가입해 일정 요건을 맞춘 국가입니다. D그룹은 북한과 이란, 아프가니스탄 등 유엔이 정한 무기 금수국에 해당합니다. C그룹은A·B·D그룹이 아닌 국가들에 해당됩니다.
한편 이날 미국의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일본이 준비되지 않은 싸움을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비판했습니다. FP는 아베 총리가 한국을 상대로 수출 전쟁을 시작했지만 역풍에 전혀 대비하지 않았다며 조만간 후폭풍을 맞이할 것이란 견해입니다.
이번 조치로 직접 타격을 받은 삼성전자의 경우 한국 GDP의 약 15%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소재 수입선 다변화 등에 적극 나설 경우 일본 기업들이 적잖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한국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일본의 무역 흑자국임을 강조했습니다. 아베 총리가 천문학적 무역 흑자를 포기할 만큼 한국의 맞대응에 대비했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지적입니다.
FP는 “참의원 선거를 마친 아베가 외교적 난관에 봉착했다”며 “독도와 센카쿠 열도·쿠릴 열도 등 영토분쟁 문제부터 호르무즈 연합군 결성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이어진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어려움을 가중시킨 행동”이라고 비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