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ㅣ씨비씨뉴스] 리비아 식 모델의 주인공이었던 카다피가 사망한지 9년입니다. 리비아 수로 공사를 제공해 한 때 대한민국의 ‘키다리 아저씨’였던 카다피가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 한국인들의 감회는 특별했습니다.
리비아를 42년 동안이나 철권으로 통치한 중동의 패자 카다피가 수도관에서 끌려나와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은 전세계에 텔레비전으로 녹화 중계됐습니다. 살려달라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분노한 시민군은 카다피를 향해 발포했습니다.
죽음을 당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는 많았습니다. 그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떠나달라는 국민들에게 용병을 고용해 무참하게 쏴댔습니다. 반군은 이런 배경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입니다. 폭군이었는지 학정이었는지도 역사가 판단할 노릇입니다. 세치 혀로 예단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우리에겐 카다피가 죽고나서 축제 속에 들리는 파열음은 우리를 오랜시간 동안 긴장시켜 왔습니다. 카다피 죽음이 대한민국의 운명과 별 상관이 없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미국과 유럽의 셈법이 틀린 것이 가장 큰 파열음입니다. 서방은 당시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42년 폭정의 종말과 함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로의 시작(프랑스), 리비아의 민주적 미래가 밝아지는 기회가 됐습니다(영국).
하지만 미국은 카다피의 죽음을 아주 늦게 공식적으로 인정하려 했습니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카다피에게 빚이 있습니다. 신사협정을 깨고 뒤통수를 친 거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이상적인 관점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실용주의적인 관점에서 잃은 것이 많았습니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가속화 되리라는 전망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났지만 미국에서 리비아는 진행형입니다. 볼턴을 자르고 트럼프가 새로운 셈법을 제시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은은 핵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지고 핵을 자위수단으로 삼을 것이라고 예견했었습니다.
‘카다피의 죽음’은 핵협상 테이블에선 좋은 소재가 아닙니다. 리비아식 모델이라는 말이 북한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맥락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 외무성은 리비아 사태를 두고 주도면밀하게 연구했습니다.
리비아는 핵을 포기했기 때문에 무장해제 됐고 군사적으로 서방의 먹이가 됐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평화나 안전은 아이를 꼬드기는 사탕발림에 불과했다고 꼬집었습니다. 북한은 자기 힘이 있어야 된다는 점을 여기서 깨달았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리비아의 선례가 있기 때문에 경제를 부흥시켜준다고 북한 정권의 완고함이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습니다.
북한은 버릴듯 버릴 듯 하면서 핵카드를 못버리고 있습니다. 사담 후세인, 카다피가 되기 싫은 김정은에게는 핵은 자위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셈법으로 제재는 유지하돼 경제는 풀어주는 분업화도 한미간에 논의될 듯 합니다.
[진행ㅣCBCNEWS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