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NEWSㅣ씨비씨뉴스] 길위에서 길을 찾습니다. 약속장소 앞에서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묻습니다.
목적지에서 목적지를 묻는데요. 문 앞에 있는데도 발견 못했을 때는 절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가야 할 곳이 말입니다. 인생에서도 일상에서도 이같은 우는 계속 범합니다.
길이 낯설수록 이런 실수를 할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낯선 지형 속에 갇히면 판단력이 떨어지게 되고 우왕좌왕하는 마음이 앞서 지형지물을 잘 보지 못하는 수가 생깁니다.
사전에 알려준 약도는 무용지물이 되고 자기 판단만이 앞서게 됩니다.
약도가 머리 속에서 지워지면 방향이 정해지지 않고 방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손바닥으로 침을 튀겨 방향을 정하는 사람들의 대열 속으로 내가 끼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 혼자 약속일 때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여러 명을 끌고 다니는 내가 리더가 될 때 아주 심각한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대장 노릇하기가 힘든 것은 여러 생명에 대한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잠룡들의 놀이터가 되면 세상은 여러 방향으로 찢어집니다. ‘우리들의 시력’도 ‘혹세무민이나 ’청맹과니‘로 전락할 우려가 높습니다.
나침반도 없고 방향감각도 없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방향은 못 정해도 어느 위치에 내가 서 있는가는 알아야 합니다.
그 위치에서 모색의 시간은 기다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턱대고 나서는 것 보다는 방향을 정하고 올바르게 가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길위에서 길찾기를 하는 것일까요. 방향을 정했을까요. 그른 방향일까요. 모색의 시간일까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모색만 해야 할까요?
방황과 모색의 시간이 긴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후퇴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리더를 가지려는 것은 목표에 빨리 정확히 그리고 안전하게 도달하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길잡이를 택할 때 중요한 것은 처한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과정, 주변에 대한 인식들입니다.
적어도 '길잡이'라면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침을 튀겨서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녹아 길이 되는 수고 쯤은 각오해야 합니다.
사람이 녹여진 '에밀레 종소리'는 깊고도 청아하다고 합니다. 그건 소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감동입니다.
[진행ㅣCBC뉴스 = 홍수연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