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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 1274년 5월, 원에서 몽골 황실과 고려 최초의 국혼이 맺어졌다. 훗날 고려 제 25대 충렬왕이 되는 고려 태자 왕심과 결혼한 인물은 쿠빌라이의 친딸인 쿠틀룩켈미쉬 공주.
당시 태자 왕심은 이미 1남 2녀를 슬하에 둔 39세의 유부남이었다. 쿠빌라이가 16세의 어린 금지옥엽 딸을 고려로 시집보낸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 몽골 제국 사위 충렬왕의 외교술
점점 노골화되는 몽골제국의 간섭 속 고려의 정치 기구 위상과 명칭이 격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충렬왕은 원 황제 쿠빌라이의 친딸과 결혼한 덕분에 몽골 황실 내 위상이 올라갔고 그의 지위는 원 황실 서열 7위에 이를 정도였다. 충렬왕은 이같은 자신의 황실 부마 지위를 활용하여 고려의 실속을 챙긴다. 쿠빌라이와의 담판 등을 통해 그가 얻어내고 지켜낸 고려의 국익은 무엇이었을까?
▶ 고려 최초 혼혈왕자 충선왕의 등장
1275년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사이에 아들이 태어난다. 아들의 이름은 왕원, 훗날 고려 제 26대 충선왕이 되는 인물이다. 몽골 황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고려 최초의 혼혈왕자 충선왕. 그는 쿠빌라이의 외손자이자 몽골 황실의 부마라는 막강한 배경 속에 성장한다. 20대의 청년이 된 그는 아버지 충렬왕과 고려의 실권을 놓고 대립 하게 된다. 아버지 충렬왕과 아들 충선왕 사이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그리고 몽골 황실은 과연 둘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 몽골 황위 쟁탈전 그리고 충선왕의 선택
즉위 8개월 만에 왕위에서 물러난 후 원에서 생활하게 된 충선왕. 당시 원 황실은 원 성종의 사촌 아난다와 성종의 조카 카이샨, 아유르바르와다 형제의 후계 경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충선왕이 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데... 몽골 황위를 둘러싼 정쟁 속에서 고려의 전 국왕 충선왕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충렬왕 이후 이어져 온 몽골 황실과 고려의 통혼 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나는 양국 관계의 이중성과 그 의미. 10월 23일 토요일 밤 8시 5분, <역사저널 그날> “칭기즈칸의 나라 몽골제국 제6편 고려와 사돈 맺다”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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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