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과 덕혜옹주 ‘조선에 뜬 시린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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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과 덕혜옹주 ‘조선에 뜬 시린 별’
  • 남충식 기자
  • 승인 2011.11.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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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 소설 ‘난설헌’ 중

“내 가장 큰 죄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핏줄로 태어난 것이다.” - 소설 ‘덕혜옹주’ 중
 

 

 

● 시대가 담지 못한 여인, 난설헌과 덕혜옹주

시리도록 아름다운 여인들이 있다. 높은 담 안에서 귀도 눈도 입도 다물고 살아가야 했던 여인. 소설로 복원한 ‘난설헌’(다산책방/ 대표 김선식)과 ‘덕혜옹주’(다산책방/대표 김선식)의 삶이 오늘날 많은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든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부모를 따르고 결혼하면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라야 한다는 삼종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 했던 난설헌. 조선의 아녀자의 분수란 그저 죽어지내는 것이 조선이 말하는 덕(德)이고 지(知)인 것인지,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법도와 예절이 쇠 추를 단 듯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조선은 난설헌의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불온시하고, 금기시했다. 시의 말미에 ‘난설헌’이라고 당호를 적었지만, 조선은 이름 없이 살아가는 여인들 속에서 그녀를 ‘난설헌’이라고 제대로 불러주지 않았다. 남존여비의 지엄한 법도 아래 조선은 말 타고 들판을 달리는 남정네보다 어쩌면 더 호방한 여인이었던 난설헌을 품지 못했다.

그리고 적국의 땅에서 이름 없는 황녀로 살아야 했던 또 다른 조선의 여인.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족이며 한때 조선 민중의 희망이었던 덕혜옹주. 그녀는 덕수궁의 꽃으로 태어났으나 한 번도 그에 걸맞게 살지 못했다. 황족으로서 부모의 죽음과 조국의 패망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지켜낼 수 없다는 비참함과 절망감에 괴로워했던 덕혜였다.

13살에 강제로 일본의 볼모로 간 이후 덕혜는 조국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몸서리쳤다. 그러나 일본의 절대 권력에 의해 일본인 귀족과 정략결혼을 하자 조국은 그녀를 잊기 시작했다. 더 이상 그녀는 조선을 살릴 마지막 끈이 아니었다. 일본의 치밀한 한민족 말살 정책에 의해 한 나라의 공주마저 유린의 대상이 되는 처참한 시대는 덕혜를 방치했다.

난설헌이 조선의 유교적 여성상에 갇혀 일생 자유롭지 못했다면 덕혜옹주는 겹겹으로 감시하던 일제의 번개칼 같은 감시와 강포에 늘 떨어야 했다.

 
●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살림살이보다 서책을 가까이 하는 딸인 난설헌을 부모는 질책하거나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결혼 이전의 초희는 동생 허균과 문장을 논하고, 함께 시를 해석했고 오라비들의 책갈피를 기웃거리며 글을 즐겨 읽고 썼다. 그러나 결혼 이후의 난설헌은 고된 시집살이에 더해 밖으로만 도는 남편과의 불화로 깊은 나락에 빠졌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외모, 지나친 사려깊음, 넘치는 다정함이 부담스러웠던 것인가. 남편 성립은 결혼 생활 내내 따스한 눈길도, 마음도 주지 않았다. 모진 시집살이에도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지키며 서책을 끼고 사는 난설헌에 대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놨다.

여성에게 유난히 엄정한 조선의 현실 질서와 불화하는 난설헌의 한(恨)은 소통하지 못하는 남편의 아내가 된 것이었다. 냉랭한 별채에 갇혀 먼 데를 바라보는 난설헌의 야윈 모습은 적국에 홀로 남겨진 덕혜와 닮은 구석이 많다.

덕혜는 원치 않는 결혼을 했고, 적국의 피가 절반이나 흐르는 자식을 낳았다. 그것은 황녀로서 수치였고 불행의 시작이었다. 난설헌이 두 아이를 연이어 잃은 아픔에 생에 대한 모든 미련을 떨쳐버린 것처럼 덕혜 자신도 딸 정혜를 잃고 점점 자신의 운명을 비극적인 결혼과 현실 속에 굴복했다.

총명한 아이라, 너무 이치가 밝아 마음을 다칠까 염려했던 고종의 말은 결국 현실이 된 것이다. 덕혜 옹주는 한시도 궁을 떠나 살지 못했고, 일국의 공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못했다. 딸 정혜가 “나는 조센징이 아니어요. 나는 일본인이어요. 날 정혜라 부르지 말아요”라며 반쪽 조선인의 정체성마저 부인할 때도 덕혜는 자신이 조선의 황녀임을 더욱 가슴에 새기곤 했다. 그저 그녀는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에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소설 ‘덕혜옹주’ 중에서

강풍이 불면 고개를 숙여야만 하는 것인가. 덕혜는 서슬 퍼런 일본의 압제와 불행한 결혼 생활 속에서 수심과 슬픔이 가득한 눈빛으로 먼 데만 응시했다. 그곳은 자신의 나라 대한민국이었다.

 

● 뛰어난 시적 감수성

‘초희야 너무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 소설 ‘난설헌’에서 어머니 김씨의 말

 

고가라서 낮이건만 인적도 없고

뽕나무 위에서 부엉이만 우네

까칠한 바위 옷 층계에 돋고

참새가 빈 다락에 깃을 쳤다네

전에는 말과 수레 머물더니만

지금은 여우의 소굴이 되어

달관의 분의 말씀 이제 알겠소

부귀는 나의 몫이 아니란 것을

- 불행한 자신의 생을 시로 승화시킨 난설헌

 

모락모락 모락모락

검은 연기가

하늘궁전에 올라가면

하늘의 하느님 연기가 매워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어.

- ‘비’,? 덕혜옹주가 일본어로 쓴 동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며 난설헌의 입에 재갈을 물렸으나 난설헌은 꽃다운 스물일곱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묵묵히 작품을 남겼다. 또한 나라 잃은 민족의 ‘상실’의 아픔과 슬픔을 덕혜는 문학적으로 풀어냈다.

여성이 존중받을 수 없었던 시대에 시혼(詩魂)을 불태우며 자신을 일으키고 인내했던 두 여인은 최문희 작가와 권비영 작가를 통해 오롯이 우리 곁에 다시 살아났다.

좋은 책의 발견 북스커버리 cbci 서하나 jindalae@cb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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