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이 사랑한 한류(韓流)의 시초 허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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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삼국이 사랑한 한류(韓流)의 시초 허난설헌
  • 김종수 기자
  • 승인 2011.12.3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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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관 쓰고 꽃무늬 저고리, 화려한 치마에

한가락 피리소리 푸른 하늘에 메아리치네

창해의 달밤에 용 그림자와 말 울음소리

한가로이 십주의 상양군을 방문하네

-‘유선사22’, 허난설헌 지음

●난설헌의 이상적 공간은 예술이었다
조선의 천재 여류 시인 허난설헌. 그는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행한 삶을 살았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이다. 특히 사대부 여인들은 일생 집 안에 갇혀 조상을 받들고, 시부모를 섬기며, 남편을 받들고, 자식을 키우는 것이 미덕이었다. 조선시대 여성은 그저 남성과 가문을 위해 존재했으며 자녀를 생산하고 가사 노동을 수행하는 재생산 노동력으로서만 인정받았다.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아야 마땅한 닫힌 조선에서 '난설헌'(다산책방/대표 김선식)은 그 답답함을, 여성의 무상함을 예술작품을 통해 표출했다. 더구나 남편과의 불화로 인한 가정사의 고통과 시집살이의 고됨, 자식을 잃은 아픔 등에서 파생된 슬픔은 그를 더욱 예술적 공간으로 몰아갔다.

현재 전해져오는 200여 편의 시들은 난설헌 자신이 처한 현실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반대로 ‘선계’라는 이상적 공간을 통해 갑갑한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도 잘 드러난다. 특히 ‘유선사’는 난설헌이 추구하는 지향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등장인물들만 봐도 그가 자유로운 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알 수 있다.

‘유선사22’에 등장하는 여인은 화관을 쓰고 꽃무늬 저고리와 화려한 치마를 입고, 달밤에 상양군을 방문해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여인은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을 연상시키며 발칙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조선이라는 현실 세계에서는 감히 사대부 여인이 꿈꿀 수 없는 ‘사랑 행위’지만 난설헌은 자신이 그리는 여인의 사랑과 이상을 시를 통해 대신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서한 부인 홀로 사는 것 한스러워

자황이 영 내려 허상서에게 시집 보내네

구름 한삼과 옥띠로 조회함이 늦으니

즐겁게 청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네

-‘유선사3’, 허난설헌 지음

 허난설헌의 시에서 ‘유선사’는 주인공인 여성의 자유롭고 적나라한 삶을 그리고 있다. 아름답고 신비한 세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선계의 선녀들의 사랑은 당시의 봉건적 제도와 규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난설헌은 자신이 꿈꾸는 이상 세계인 선계를 극대화시키며 더욱 화려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재창조했다.

‘유선사3’에서 볼 수 있듯이 홀로 사는 것을 한스러워하는 서한 부인이 등장한다. 과부는 여인에게 수치이며 더욱이 드러내놓고 재혼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던 조선시대에 난설헌은 과감하게 서한 부인을 허상서에게 시집보낸다.
 
그러나 아름다운 구름 한삼과 옥띠에 관심이 쏠려 그만 조회하는 데 늦어버린다. 그럼에도 서한 부인은 즐겁게 청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허난설헌의 불행한 현실의 삶과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다. 허난설헌은 이처럼 자신이 꿈꾸는 행복한 여인의 삶의 모델과 자신이 미처 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을 문학 세계를 통해 대신 달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동양 삼국(한중일)이 사랑한 국제적 시인, 난설헌

국내에서 허난설헌의 흔적은 많지 않다.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았기 때문도 있고 작품들 역시 유실되거나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생 허균에 의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난설헌집’은 중국에서 먼저 그 가치를 알아봤다. 당시 사신으로 조선에 온 주지번은 난설헌의 시를 보고 책의 목판본을 중국으로 가져가 ‘허난설헌집’을 냈다.

허난설헌의 시에 반한 주지번은 “그 티끌밖에 나부끼고 나부껴 빼어나면서도 화사하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뼈대가 뚜렷하다”고 칭송했다. 또한 “저 ‘유선사’ 등 여러 작품은 오히려 당대의 시인에 귀소할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실학자 홍대용의 기록에도 허난설헌의 시가 중국에서 얼마나 관심을 끌었는지 알 수 있다. ‘난설헌집’이 중국에서 발간되고 150여 년이 흐른 뒤 청나라를 방문한 홍대용은 청의 학자에게 “그대 나라에 살던 경번당(허난설헌의 별칭)이 시를 잘 짓기로 이름나서 우리나라 시선에도 실렸으니 대단하지 않은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사신들은 난설헌이 8세에 지은 시 ‘백옥문상량문’을 본 후 ‘당 시인 이하가 환생해 지은 작품’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이하는 스물일곱 나이에 병을 앓다가 죽었는데,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옥황상제가 백옥루를 지어놓고, 저더러 하늘로 올라와 낙성식의 글을 지어 달라고 합니다”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난설헌 역시 신선세계에 있는 광한전에 백옥루를 짓는 상상을 하고 그 건물의 상량문을 지었다.

 이처럼 주지번에 의해 중국으로 건너간 난설헌의 시들은 큰 인기를 끌었고 중국의 문인들은 난설헌의 시를 애송하며 경탄했다. 실제로 중국 베이징의 국가도서관에는 그의 작품과 관련 서적들이 소장돼 있다.

이후 난설헌의 시는 일본에도 전해졌다. 1711년 일본의 분다이야 지로는 그의 시를 묶어 책으로 발간했고 역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생전 빛을 보지 못했던 난설헌의 시들은 그렇게 외국에서 먼저 인정받았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일부 사대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난설헌의 시가 읽히며 규방의 뛰어난 시인이며 천재 작가로 인식되었다.?아는 한중일 삼국의 진정한 베스트셀러이며 한류의 시초인 셈이다.

비록 허난설헌의 현실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해 항상 그 사랑을 외로이 기다려야 했고, 자식을 잃은 슬픔조차 속으로 삭혀야 하는 비운의 삶이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억압된 자아의식을 되살리며 예술혼을 불살랐다. 맘껏 시적 상상력을 펼치며 자신의 현실과 이상을 그려내며 끝끝내 유교적 여성상에 갇히지 않은,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조선의 천재 시인으로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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