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서점을 다니면서 얻은 생각은 ‘세월이 스승이다’라는 점이다. 저마다의 노하우와 경영 철학을 가지는 데 무수한 경험과 시간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입소문으로 전해들은 이가영 사장은 이런 내 생각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절대 시간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열정’이 아닐까.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엄마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편이다. 찾아온 고객들에게 책을 권해 줄 때에도 한 치의 망설임이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아이에게 읽혀 본 책들, 꼭 읽혀 줘야 할 책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쇼핑 사업 쪽에는 ‘잇 백’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그래, 바로 그 가방!’이라는 느낌의 뜻인데, 아마 군산에서 ‘잇 북스토어’쯤 되지 않을까? 아이에 대한 관심이 있는 엄마라면 절대 놓치고 지나갈 수 없는 곳, 그리고 그곳에 주인공인 이가영 사장이 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딱 부러지는 이가영 사장은 올해 서른여섯의 젊은 사장님이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워킹맘이기도 하다.
“퇴근할 시간이 되면 새로 나온 전집을 펼쳐 놓고 읽기 시작해요. 어떤 책이 좋은지 알아야 고객님께 권해 드릴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음 날 오는 고객님께 어제 읽었던 책의 재미있었던 부분을 이야기해드리곤 하는데, 고객님들이 깜짝 놀라세요. 제가 너무 즐거워하면서 이야기하니까요.
또 저는 신간 교육이 있으면 서울도 마다않고 참여해서 그 책에 대해 공부하려고 노력해요. 그 책에 담긴 정신이나 제작 과정까지 알면 독자에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요.”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는지도 반드시 체크한다. 편집자의 헌신이 스며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다. 이가영 사장 역시 엄마이기에 아이들의 책을 고르는 눈 역시 깐깐할 수밖에 없다. 내용을 꼼꼼하게 살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특히 중요하게 살피는 것 중의 하나가 종이 재질인데,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판사가 아이들에게 갖는 마음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특히 중요한 그림책에서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원화의 느낌과 색상을 거의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관건인데, 종이의 질에 따라 똑같은 빨간색이라도 아이의 눈에는 다르게 들어오기 때문이다.
화려한 색깔을 사용한 단조로운 그림보다는 파스텔 톤이 조화되어 있는 그림 동화를 선호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시각적 자극을 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또 한 가지, 이가영 사장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어떻게 풀어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엄마들이 오시면 제가 옆에 앉아서 책을 읽어 드려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엄마와 책을 읽는지를 느끼게 해 드리기 위해서죠. 그렇게 읽어 드리면 열에 열 분이 다 깜짝 놀라시는데, 그제야 그림책의 그림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엄마들은 책을 읽어 주느라 아이들이 그림에 빠져 있다는 걸 모르실 때가 많거든요.”
엄마들은 아이들이 어서 글자를 읽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을 깨치기 전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이야말로 언어인 셈이다. 그림 언어를 많이 접하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 역시 아동 서점을 운영하는 이가영 사장의 철학이다.
이가영 사장에게는 다른 서점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관심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문화 가정에 대한 관심이다.
“다문화 가정에서 아이들의 책을 구매하러 오시면 부부가 같이 오시라고 부탁드려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태어난 아버지들이 처음엔 말을 많이 하시죠. 그러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들도 조금씩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요. 책에 대한 말도 많이 하고요.
다문화 가정에서 책을 사가면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게 되잖아요. 그림책을 보면서 아이와 유대감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이곳에 오셔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어 갈 수 있다고 하실 때 행복합니다.”
아이들에게 그림 동화란 이유식과 같다고 말하는 이가영 사장.“밥부터 먹을 수 있다면 일부러 그림 동화를 읽힐 필요가 없을 거예요.” 어린이 책을 향한 열정과 부모를 향한 진심이 그녀의 목소리에 한가득 묻어 있었다.
아이에게 계단식으로 이유식을 먹이는 것도 아이들의 입맛을 점차 성인의 음식에 맞춰 나갈 뿐만 아니라 영양을 잘 흡수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이를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엄마의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동화 속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게끔 아이들의 시선으로 책을 골라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러다 보면 책을 통해 마음의 양식이 쌓이고, 간접 경험을 통해 세상의 지혜로움을 배워 아이가 먼 훗날 현명함을 지닌 마음의 부자가 되리라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가영 사장의 확고한 철학을 듣고 있으려니, 곡성에서 또는 부산에서 몇 시간의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군산까지 찾아와 주는 고객들이 많다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제가 가장 고맙고 기억에 남는 고객들은 멀리 이사 가고 나서도 전화 주시고 휴가 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에요.” 하며 작게 웃는 모습이 무척 정겹게 다가왔다.
후텁지근하던 날씨를 비웃듯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내렸다. 청량함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득 채워지는 느낌, 이가영 사장과 인사를 나누면서 마음이 산뜻해졌던 이유 역시 주인공의 명쾌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