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2018-03-12     이동규

가면가고 오면 오는 것이 세월이다. 좋은 것은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날도 항상 있지 않다. 우리네들은 이런 운명 속에서 산다.

좋은 기회가 오래 머무는 것이 없다는 것은 인생을 웬만큼 살아본 이라면 쉽게 느낄 수 있다.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왕은 자신의 교만을 막기 위해서 세공장에게 주문을 했다고 한다.

“반지에는 내가 큰 승리를 거둬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스스로를 자제할 수 있고, 반면 큰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도록 해달라고.”

그의 아들인 솔로몬 왕자는 아버지의 반지에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는 글을 써줬다. 환희가 사라지는 것처럼 고통 역시 지나가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역사를 매우 중시한다. 인간에게 개인사가 중요한 것처럼 역사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인간은 변화의 중심에 서 있고 모든 사물은 변화를 하고 있다.  인생이 마디로 이어졌다고 가정 했을 때 어느 마디든 빠져나가면 온전한 인생이라고 칭하기 어렵다. 

인간에게 마치 개인사만 존재하는 듯한 접근 방식은 외곬의 정형을 낳을 뿐이다. 인간이 유장하게 이어 오는 것은 역사이며 청사(靑史)이다.

개인사만 강조한다면 역사 속에 개인이라는 문제 안에 자신을 넣었을 때 많이 당황할 것이다.우리의 개인적인 삶이 맘대로 살아지지 않는 것은 외부적인 틀이나 정치체제, 경제 제도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역사를 전달해 주는 역할을 통해 보람을 찾을 수 있다. 개인사가 역사보다 백배 중요하다고 느끼겠지만, 그래서 자신은 그로부터 매우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개인사라는 것도 역사적인 맥락 속에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라에서 집을 준다면 집을 사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만약 누구나 대학교에 거저 입학할 수 있다면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또 누구나 취직을 할 수 있다면 스펙을 쌓는데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픈 청춘이라는 말도 환원해 보면 구조적 모순이나 체제 내적인 문제점들이 중첩된 것에 한 부류일 수 있다.

낭만적인 전사, 혹은 낭만적인 전쟁이라는 것도 사실은 대서사사적인 싸움에서 비롯된다. 큰 전쟁에서 지고 작은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렵다.

물질 속에 절망하고, 스펙 속에 절망하고, 연애 속에 절망하고 ,학벌 속에 절망하고, 돈 때문에 절망한다는 메시지는 결국 희망이 없다는 것 이었다.

어쩌면 애초 절망도 희망도 과도하게 부풀려진 기대일 수 있다. 개인이 반역사적이어야지만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것도 씁쓸한 일이다.

어떤 일에 빨리 접근해서 완성도가 빠르고 높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이 세태는 그것만을 선망하는 경향이 있다. 결국 그렇게 순치된다면 후손의 후손까지 계속 '아프다'라는 말만 되 뇌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