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판을 뒤흔든 한국축구 … 2022년 ‘졌잘싸’는 없어야 한다

2018-06-28     심우일 기자

한국 축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FIFA 랭킹 1위 독일을 보기 좋게 꺾으며 2018 러시아 월드컵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예선 1, 2차전의 아픔을 달래주기에 충분한 경기였다. 지난번 대회인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인 독일은 통산 우승 4회에 준우승 4회, 4강 5회를 달성한 전통의 축구강국이다. 이번 대회에서 스페인, 브라질, 프랑스, 아르헨티나 등과 함께 강력한 우승후보로 손꼽혔다.

한국의 승리는 단순한 승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각종 전리품까지 따라온 값진 승리였다. 우선 독일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에 한국이 여전한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줬다는 것이다.

독일은 지난 1994 미국월드컵 예선전에서 3-0으로 크게 앞서다 후반 2골을 먹히며 턱밑까지 추격당한 경험이 있다. 준결승에서 맞닥뜨렸던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후반 막판 승부가 결정될 정도로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매번 쉽지 않은 경기였건만 통한의 패배를 당하면서 트라우마까지 생길지 모를 일이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에게 전달하는 의미가 크다. 축구 변방이 아닌 언제라도 주전으로 나설 수 았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아시아 축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데 적잖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한국 축구가 대이변을 일궈낸 원동력이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투혼에서 나왔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시작 전 이길 확률이 1%도 안 된다는 조롱을 선수들도 이미 들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반 추가시간까지 사력을 다한 것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고도 남는 장면이다.

실제 대표팀은 무려 118㎞를 달렸다고 한다. 독일보다 3㎞를 더 뛴 것이다. 슈팅은 11개로 독일의 26개보다 절반 이상 적었지만 유효슈팅 5개 중 2개를 골로 만들어내는 집중력까지 보여줬다. 외신들은 앞 다퉈 “그라운드를 필사적으로 달리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월드컵의 존재 이유를 잘 보여준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GK 조현우의 맹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해외파도 아닌데다 그동안 대표팀 백업 선수로 그라운드를 지켜보던 시간이 많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나도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다”며 자신의 플레이가 희망을 주길 간절히 고대했다.

땅 속의 시련을 먹고 기다리다 빛나는 대지 위에 나갈 기회가 되니 어느 누구보다 활짝 피어난 것이다. 수퍼스타의 등장은 이렇게 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번 승리의 만끽은 짧게 끝내야할 것이다. 매번 지적되지만 엷은 선수층과 대한축구협회의 감독 선임 문제와 투명 행정을 둘러싼 각종 논란, 그리고 월드컵에만 반짝이는 열악한 인프라 등 고쳐나가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축구계는 안일한 모습을 고쳐야 한다며 4년 뒤에는 도약하자고 다짐했다. 그때와 비교해보면 과연 얼마만큼 진보했을까.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또다시 같은 말을 내뱉으면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위로를 삼을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냉철히 바라봐야한다. 그리고 암세포를 제거해야만 새살이 돋고 치유할 수 있다. 2022년에는 독일전의 감동을 이어가 더 큰 감동을 국민들에게 한가득 안겨주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