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꼿꼿한 네이버, 민낯 보여준 이메일 임의 삭제

2019-05-06     CBC뉴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은 네이버가 대형 사고를 터뜨렸다. 지난달 30일 네이버 블로그 광고주들에게 광고료를 정산하고 원천징수영수증을 자동 발급해주는 프로그램 ‘애드포스트’가 오류를 일으켜 2200여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의 대처는 네이버의 독단 수준을 짐작키에 충분한 장면이다. 회원들이 이미 읽은 메일까지 임의로 삭제한 것이다.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해명이지만 이용자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읽은 메일을 삭제한 사실은 납득하기 힘들다. 언제든지 회사 필요에 따라 개인 메일 검열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는 장면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공간인 이메일을 운영사가 직접 들어가 낱낱이 살펴보고 통보도 없이 삭제해버린다면 회원들은 어떻게 마음 편히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까.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초유의 조치다.

또한 빠른 시간 내 읽은 메일 회수가 이뤄졌다는 점은 사안의 심각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증거다. 2200여 명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 광고 수입 내역 등 개인 프라이버시의 무더기 유출이라는 심각성을 인지했다면 인과관계를 밝히고 정식 사과하는 것이 마땅한 수순이다.

이번 사건도 회원들이 먼저 발견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몇몇 회원들은 네이버에 직접 신고를 했지만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해당 사실을 전했다. 결국 네이버의 수습 능력이 사건을 일파만파 키우는 핵심 매개체가 된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네이버의 목이 여전히 꼿꼿하다는 것이다. 메일 삭제를 두고 관계 기관의 개인정보 유출 대응 매뉴얼에 따라 법리적 검토를 거쳤다며 적법한 조치라는 항변이다.

그러나 네이버가 언급한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의 개인정보 유출 대응 매뉴얼에는 ‘이메일 회수가 가능한 경우 즉시 회수 조치하고 불가능한 경우에는 이메일 수신자에게 오발송 메일의 삭제를 요청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시장 독점자의 권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라 봐야 할까.

그동안 네이버의 시장 독점은 수많은 문제점을 양산해왔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댓글 조작 ‘드루킹 사건’부터 뉴스 콘텐츠 장사, 입맛에 맞는 뉴스 배열, 언론 줄 세우기, 저널리즘의 위기 조장 등 포털의 독점이 어떠한 폐해를 빚어내는지 골고루 보여줬다.

네이버는 지난해부터 콘텐츠 창작자들의 보상을 강화해주겠다는 전략에 나서고 있다. 구글의 유튜브로 콘텐츠 소비가 크게 이동하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다. 또한 포털사이트에 머물지 않고 인공지능과 로봇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 키워드 산업에 적극 투자해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창립 20주년을 맞아 원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을 자문해볼 일이다. 네이버도 몰랐을 것이다. 버블닷컴이 한창일 시기 스타트업으로 의기투합한 그 열정이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할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스타트업의 초심을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