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화웨이 사태, 제2의 사드 비화 없어야

2019-05-24     CBC뉴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중 무역전쟁을 대하는 태도가 살기등등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재선을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가리란 예상을 뒤엎고 뼈를 꺾어버려야 분이 풀리겠다는 등 앞일은 생각지 않고 있다.

어찌 보면 ‘우리도 미국에 맞설 만큼 힘이 커졌다’고 목소리를 높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도발이 파국 국면을 몰고 온 이유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입장에서도 이번 화웨이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단순히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구글의 플레이스토어와 G메일, 유튜브 등의 핵심 앱이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되지 못해 잘 된 것이 아니냔 이분법적 사고는 곤란하다. 글로벌 IT 시장의 혼란 내지 국지적으로 사드보복과 같은 한국 경제의 타격도 감안해야한다.

물론 반사이익 기대감은 충분히 존재한다. 현재 화웨이는 인도와 아프리카 등 신흥시장을 비롯해 유럽 시장 공략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다. 화웨이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못 쓰고 퀄컴의 칩셋까지 제공받지 못하는 등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면 화웨이가 아무리 싼 값에 제품을 내놓는다 해도 고객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해외 시장 점유율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통신기기 거래 제한 조치도 5G 네트워크 선점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노키아, 에릭슨 등에게 매우 좋은 소식일 수 있다. 화웨이의 공백을 빠르게 메우면서 화웨이의 굴기를 철저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생각까지 미칠지 모른다.

그렇다고 떡 줄 사람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벌컥벌컥 들이키는 우스운 꼴은 경계해야 한다. 보다 현명한 자세와 대응이 필요한 국면이다.

화웨이는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을 내수 시장으로 삼고 있다. 이번 무역전쟁의 영향으로 자국민의 국수주의가 분기탱천한 상황이다. 즉 쉽게 무너질 기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화웨이에 메모리 반도체를 비롯한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업체들의 악영향을 수읽기 반경에 넣어야 한다. 수출선 다변화로 리스크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국내 ICT 수출 1위가 중국이라는 점은 엄연한 현실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적으로 득이 될 수 없는 증거다.

실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국내 대표 ICT 기업들이 화웨이를 경쟁자 내지 우수 고객으로 삼고 있다. 여기에 화웨이를 5G 장비공급사로 선정한 LG유플러스의 경우 막대한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국제 정세를 내다보지 못해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지만 그럴 수밖에 없던 환경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겠다.

최근 미국 정부는 우리 정부에게 화웨이 보이콧에 동참해주길 직접적으로 요청했다. 우리 정부에게 공이 넘어온 상태에서 섣부른 대응은 자제해야한다.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실리를 취하는 방법은 무엇일지, 중국 시진핑 주석의 야망을 잘 어르면서 제2의 사드 사태를 촉발하지 않는 ‘신의 한 수’가 절실하다.

바둑 전략인 위기십결(圍棋十訣) 중에 ‘신물경속’(愼勿輕速)이란 말이 있다. 이곳은 이렇고 저곳은 저렇다 하는 식으로 속단하고 덤비면 위험하다는 뜻이다. 현 정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쳤다가 실리와 명분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실패를 거울삼아 신중히 생각한 후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