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누진제 개편 못하겠다 … ‘탈원전 정책’ 반기

2019-06-21     최영종 기자

한국전력공사가 누진제 개편을 거절했습니다. 적자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는데다 정부가 누진제 개편에 따른 손해를 충당해줄 것인지도 불투명하다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주주들의 반발도 감안해야 하는 등 해결책 없는 강압적인 이행은 거절하겠단 강경 대응입니다.

한전은 21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개최하고 민관합동 전기요금 누진제 TF가 권고한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최종 개편안 의결을 보류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결정으로 올 여름 누진제는 지난해와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이사회는 이사진의 반대 입장이 많아 수용이 어렵다는 의견입니다. 이사회는 김종갑 한전 사장을 비롯해 이정희 한전 상임감사위원 등 상임이사 7명과 김태유 서울대 공과대 명예교수(이사회 의장) 등 비상임이사 8명이 참석했습니다.

TF는 지난해 전력 사용량을 감안했을 때 1629만 가구가 올 여름 전기료 요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전기료 누진제 개편안을 제시했습니다. 할인 수준은 가구당 월 1만142원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사회는 이렇게 될 경우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할인에 따른 2847억 원의 비용을 보전할 방법이 없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실제 한전은 올 1분기 6299억 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사상 최악의 1분기 실적을 기록한 바 있습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력 생산비용이 늘어난 것과 국제 연료가격 상승으로 전력구입비가 천정부지 치솟는 등 이중고에 시달린 결과입니다.

원료가격은 전기의 원가에 해당합니다. 연료가격이 늘어난 만큼 전기료도 늘어야 손해를 보지 않지만 전기료가 그대로면 전기를 파는 만큼 손해를 보게 됩니다. 

2분기 실적도 암울한 상황에서 실적 개선을 위해 마냥 당하지만 않겠다는 의사입니다. 정부의 보복이 있더라도 반발할 건 반발하겠다는 절박함이 투영됐습니다. 산업용 전기의 경우 정부의 기업 활성화 정책과 내수 경기의 침체와 맞물리기 때문에 정부가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사회 의장인 김태유 서울대 교수는 “빠른 시일 내 추가적인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며 “누진제 개편안은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아 의결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한전의 소액주주행동 측은 한전이 누진제 개편안을 수용할 경우 배임 혐의로 고발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입니다.

이들은 지난 2016년 이미 누진제 완화에 나선 상황에서 현 정부가 인기영합 포퓰리즘을 위해 누진제를 적극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전은 정부의 압박과 소액주주행동의 고발에 샌드위치가 되면서 전기료 개편안 의결을 결행하면 배임죄에 해당하는지 국내 대형 로펌에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