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땅콩] 보수, 이이제이(以夷制夷)즐기다 권불십년(權不十年) 찬스날리나?

2019-09-27     김민철 기자

[CBC뉴스ㅣ씨비씨뉴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범 보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이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대한민국 보수들의 공통적인 현상은 상당한 피로도를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스팔트 보수 강단 보수 등이 각개약진을 하고 있지만 동상이몽입니다. 

이는 이념도 출시 년도가 있고, 유통기한이 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들은 이념이 감가상각된다는 점을 통찰하지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보수들은 자신들의 이념의 탯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정파적 이익에만 치중돼 있습니다. 

보수가 이너서클이 아니라고 느낀 보수 인사들은 남의 떡이라고 여겼던 진보 쪽을 자꾸 넘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승만에서 사례를 찾고 박정희에 교훈을 얻어야 하는 맥락에서도 노무현이나 김대중을 들먹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현상은 보수 일부에서 DJ를 거론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하는 횟수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보수매체 칼럼에서 조차도 "적어도 누구 때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쓰는데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애정표현은 현재의 진보의 그릇됨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2011년 대표적인 보수매체는 ‘노무현이 그립다’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편집국장을 지낸 한 논설위원의 이 글은 한미 FTA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를 추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글이었습니다. 물론 이 매체가 노무현을 추어 주는 이유는 이이제이적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존 메이저 언론들은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그리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말기에는 취재 시스템을 두고 전 언론과 큰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보수의 논리를 보노라면 뭔가 정리정돈이 안되고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과거 ‘우익은 죽었는가'를 쓴 양동안 교수는 '사상과 언어'라는 책을 통해 진보라는 용어를 잘 못 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양교수는 ' 80년대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입니다. 그는 "사상관련 용어가 잘 못 쓰여 국민의 사회인식과 사유에 혼란이 초래되고 이것이 장기간 지속되면 국가는 재앙을 초래한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은 '진보'라는 단어라고 정의했습니다. 

양 교수는 진보 라는 말에 정도나 수준이 높아진다는 의미가 담겨있어 긍정적인 함의가 들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사상을 달리하는 정치세력은 좌우로 표현해야지 진보 보수로 표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보수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문제는 용어 뿐 만이 아닙니다. 사실은 보수의 꽃인 기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원인입니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전체 부의 40퍼센트 상당을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사회적 책임으로부터는 둔감한 편입니다.

자본 3.0의 상징인 기업의 총수들이 보이는 행태는 대쪽같은 보수 논객들을 동요하게 만듭니다.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를 담아낼 그릇이 새게 합니다.

일본의 무역 규제 등도 보수들을 혼란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일부 보수는 사상적으로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밀접한 편입니다. 

이들은 일본제국주의의 인프라가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틀을 놓는데 어느 정도 기여 했다는 논리를 폅니다.

대한민국 기득권은 일제 식민지 잔재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한가하게 한국 우익들의 비위를 맞춰줄 여력이 없습니다. 

일본의 막가파식 한국 공격은 이 땅에서 일본 편을 드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듭니다. 

보수가 남의 떡을 자꾸 힐끗거리는 이유는 재벌의 부도덕, 일본의 발호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모두 초조한 몸놀림을 보는 듯 합니다. 이 두가지 사안은 콘센서스가 없는 밀어붙이기입니다. 이들도 이것이 무리수 임을 알지만 왠지 자신감이 떨어진 보수들은 넥스트에 대한 자신감이 없습니다.

무엇이 대한민국 보수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지 쉽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아직은 살아있는 자나 죽은 자 그리고 아이콘마저도 보수의 힘이 녹록지 않습니다. 

현재 보수에게는 화무십일홍이라는 속담도 가슴에 새겨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화무십일홍은 한번 성하면 반드시 쇠하여짐을 비유한 말이다. 남송의 시인 양만리가 자신의 시에서 썼다고 합니다. 

권불십년이 맞다면 보수의 ‘차례’입니다. 이런 ‘조건식’에도 불구하고 보수는 소리없이 강하지 않습니다. 

아스팔트에 나가고 반일 종족주의를 저술합니다. 보수가 불안에 떠는 이유는 마땅한 '넥스트'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행ㅣCBCNEWS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