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땅콩] ‘시스템’과 ‘가짜 경지’

2019-10-30     김민철 기자

[CBCNEWSㅣ씨비씨뉴스] 너바나는 불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경지입니다. 우리말로는 해탈이라고도 하고 열반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이 열반이든 해탈이든 최고로 행복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너바나는 인간이 함부로 넘보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은 불교가 아닌 곳에서 드러났습니다.  세계적인 록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행복한 열반을 못했습니다.

열반과 해탈, 적멸로 해석되는 궁극의 목표에 감히 도전장을 냈지만 '열반'에 들지 못했습니다.

너바나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인간 누구도 갈 수 없는 세계에 너무 쉽게 접근한 것이 커트 코베인의 비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박한 꿈을 꾸면서도, 웅대해졌고 유명해 졌습니다.

서양청년은 동양의 꿈으로 너바나를 이해했을 것입니다.

너바나는 흥분제나 각성제로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커트 코베인은 ‘너바나’를 짊어지고 다녔지만 현실에 좌절했습니다.

한 이름을 가지려면 그 이름에 도달할 수 있는 채비는 있어야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름값 하기가 결코 쉬운 세상이 아닙니다.

이름만 거창하게 지어놓고 이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름에 대항하다 희생당한 이가 커트 코베인입니다. 

너바나는 어쿠스틱 기타로 처리한다고 보여지는 세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심오하고 광대하고 무변한 변화의 세계를 알기에는 ‘너바나들’은 너무 유약했습니다. 그리고 무지했습니다.

이는 최고의 경지는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돈 못벌고 무능한 사람들은 마땅히 독설과 힐링의 처방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 되고 있습니다.  서점가에서는 여전히 독설, 힐링의 인기가 식지 않고 있습니다.

서점가에 범람하는 ‘독설과 힐링’에는 개인이 감당해야할 고통만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회는 원래 비정하고 세상은 자비롭지 않다는 점만 강조됩니다. 또 하나의 개인적인 ‘너바나’입니다. 

무능한 개인이 사회가 가진 정글성을 깨닫지 못한 것이 죄라고 질타합니다.
 
한 자기계발서에서는 ‘용서하지 마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실패의 주홍글씨가 자주 등장합니다. 

‘혹사의 생활화’와 ‘스트레스의 고마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그 책의 주제입니다.
 
‘한 줄’도 이 사회를 변화시켜 사람이 살만한 세상으로 바꾸자는 말은 없습니다. ‘타락한 사회’는 견고하다는 것이 독설과 힐링의 복음입니다.

'가짜 경지', 개인적인 해결책이 사회의 시스템보다 우위에 있는한 그 사회는 경지의 경지인 ‘너바나’입니다.

 

[진행ㅣCBC뉴스 = 권오성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