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프랑크프루트 선언 … 임직원들 대화 350시간에, A4 용지 8,500매에 해당

2020-10-26     심우일 기자
사진제공=삼성

[CBC뉴스] 삼성그룹에게 1993년은 매우 중요한 해이다. 1993년을 계기로 삼성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고 이건희 회장하면 연상되는 ‘바꿔 선언’은 이때 이뤄진 것이다. 이 회장은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라고 설파했다. 

1993년에 행한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경제사에 길이 남을 만한 명강연이었다. 1993년 6월4일 이건희 회장은 일본 도쿄에서 삼성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福田) 고문은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등이 일체화 되어야 하는데,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사진제공=삼성

당시 이건희 회장은 보고서에서 거론되고 있는 사항들이 고질적인 업무관행이었음을 느꼈다.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내에서 이 사실을 이야기가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사장단에게 논의하게 했다. 이런 논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건희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6월 7일 마침내 이건희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사진제공=삼성

삼성 측은 "이건희 회장은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기대와  위기감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음. 때로는 찬란한 비전과 희망에  흥분하기도 했고, 때로는 무섭게 엄습해오는 책임감 때문에 등골이 오싹해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는 삼성에게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빼앗아 가 버리는 종말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고 이 회장 심경을 밝혔다. 

사장단 회의를 갖고 여러 선진국들을 둘러보면서 이건희 회장은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회장 자신부터 변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삼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했고, 마침내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주요 임원들은 프랑크푸르트로 긴급 소집됐다. 이때부터 신경영을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건희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고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1993년 6월부터 8월 초까지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쿄에 이르는 대장정을 통해 이건희 회장은 사장단, 국내외 임원, 주재원 등 연인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회의와 교육을 실시했다.

임직원들과 나눈 대화시간은 350시간에 달했으며, 이를 풀어 쓰면 A4 용지 8,500매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이었다. 

한편 이 회장은 “앞으로 세상에 디자인이 제일 중요해진다. 개성화로 간다.자기 개성의 상품화, 디자인화, 인간공학을 개발해서 성능이고 질이고는 이제 생산기술이 다 비슷해진다. 앞으로 개성을 어떻게 하느냐 디자인을 어떻게 하느냐.”라며 프랑크프루트 선언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