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 꺾은 웰링턴, 그는 누구?

2022-01-29     박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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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했던 나폴레옹. 86번의 전투 중 77번의 승리를 거두며 19세기 초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그였지만 워털루 전투에서만큼은 뼈아픈 패배를 당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프랑스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나폴레옹의 워털루 패배는 공화국에서 다시 왕정국가로, 새로운 질서에서 구질서로 회귀하는 역사적 흐름을 낳았다.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역사저널 그날’ 346회 신년기획 세계사를 바꾼 승부 다섯 번째 시간 <나폴레옹 최후의 승부, 워털루 전투>에서 알아본다. 

▶ 동시대에 태어난 두 천재, 나폴레옹 vs 웰링턴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나폴레옹. 우리나라 사람도 나폴레옹이 쌓아올린 전적이나 업적은 잘 모를지라도 ‘나폴레옹’이라는 이름 네 글자는 너무나 잘 안다. 유명한 만큼 나폴레옹에 관한 여러 가지 비화와 소문, 그리고 오해들을 ‘역사저널 그날’에서 짚어 본다. 한국에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과 관련된 추억의 물건들이 등장해 향수를 일으켰다는 후문.  

반면 워털루에서 나폴레옹을 꺾은 영국의 장군, ‘웰링턴’은 누구일까? 

프랑스에서도 자세히 다뤄지지 않는, 특히 한국인에게 생소한 웰링턴 장군. 그는 영국의 정통 귀족 출신으로 프랑스와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게릴라’라는 말의 유래가 됐을 정도로 전술의 천재라고 평가받는다. 승자보다 유명한 패자, 덜 알려졌지만 승자만큼이나 천재적이었던 패자. 나폴레옹과 웰링턴의 대결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아본다.  

▶ 19세기 유럽의 전투, 그것이 궁금하다 

전기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 전쟁 중 200km가 넘는 거리에서도 문자를 보낼 수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오와 열을 지어 적군을 향해 행진하는 전열보병. 실용성 따윈 눈을 씻고 봐도 없는 화려한 근대의 군복 등, 유럽의 역사서나 영화를 볼 때마다 궁금해 했을 법한 의문들을 무기 및 전략 전술 전문가인 박금수 박사와 함께 해소해본다. 유럽의 전쟁, 그것이 궁금하다. 유럽의 독특한 전투 방식의 이유와 전쟁의 신(神) 나폴레옹의 전투 꿀팁(?)을 알아본다.  

▶ 유럽사를 바꾼 워털루 전투 

결말을 미리 안다는 점에서 ‘역사는 스포일러’라는 말대로 워털루 전투는 프랑스가 패배했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대단한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에서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워털루 전투를 끝으로 10년 이상 유럽을 벌벌 떨게 한 나폴레옹 전쟁도 막을 내리고, 유럽은 다시 왕정중심의 체제로 돌아간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전파한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 정신은 유럽 전역에 퍼져 향후 공화정과 민주주의가 태어날 수 있는 불씨가 되어주었다.  

패전이 불러일으킨 세계사의 새로운 바람. 1월 29일 토요일 저녁 8시 5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46회 신년기획 세계사를 바꾼 승부 다섯 번째 시간 <나폴레옹 최후의 승부, 워털루 전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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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