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정조의 사랑, 의빈 성씨 성덕임
[CBC뉴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최고의 성군 정조. 문무 겸장의 군주이자 늘 백성을 생각한 애민 정신까지. 이런 정조에게도 뗄 수 없는 꼬리표가 하나 있었는데. ‘미치광이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 아버지처럼 버림받지 않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일어서야 했던 정조. 사도세자의 아들에서 성군이 되기까지 정조의 여정을 역사저널 그날 351회 리더의 눈물과 선택, 그렇게 성군이 되다 ④편 <정조, 살아남기 위하여> 에서 살펴본다.
역적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
1762년,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다. 당시 정조의 나이 고작 열 살.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빠져있을 틈도 없이 정조는 왕위를 이을 준비를 시작해야 했다. 사도세자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려야 했으며 즉위 후에도 여러 차례 암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조직적인 암살 위협에 정조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철저한 외톨이일 수밖에 없었다.
정조의 사랑, 의빈 성씨 성덕임
그 와중에서도 정조의 안식처가 되어준 한 사람이 있었으니. 최근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을 통해 화제가 된 정조와 의빈 성씨의 러브스토리를 다시 한번 조명한다. 세손 시절부터 정조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궁녀 성덕임. 하지만 두 번이나 정조의 구애를 거절한다. 한낱 궁녀가 세손의 승은을 거절한 이유부터 사랑의 결실을 맺는 과정 그리고 가슴 아픈 이별까지, 두 사람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낱낱이 파헤쳐보는 시간. 의빈 성씨와 아들 문효세자의 묘가 위치한 서삼릉을 직접 찾아가 두 사람이 함께 묻혔던 효창원에 담긴 안타까운 사연까지 만나본다.
위민의 마음으로, 성군 정조
1793년, 금등지사를 공개하며 아버지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킨 정조는 이듬해 자신의 이상을 담아 수원 화성 축조를 시작한다. 화성을 건설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의 아버지로 존재하고자 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조선왕조 마지막 성군이었던 정조. 하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정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정조가 성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성장해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알아보고, 그로부터 리더가 지녀야 할 덕목이란 무엇인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3월 13일 밤 10시 3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51회 리더의 눈물과 선택, 그렇게 성군이 되다 ④편 <정조, 살아남기 위하여> 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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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