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명성왕후 시해 '을미사변', 그날의 기억

2023-01-15     박은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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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군과 낭인들이 경복궁을 급습한다. 작전명 여우사냥, 목표는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였다. 일본인의 칼에 무참히 살해된 뒤 불에 태워진 명성황후. 한 나라의 왕비가 궁궐 안에서 살해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시해 후 2년 2개월이 지나기까지 치러지지 못한 명성황후의 장례! 명성황후 죽음 이후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만나보는 시간.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 고종과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과 함께 대한제국의 역사를 살펴본다.

명성황후 시해, 그 이후의 이야기? 

불에 태워진 명성황후의 시신. 그 후 남은 유해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훈련대 참위였던 윤석우에 의해 수습되어 매장된 명성황후의 유해. 하지만 윤석우에게 내려진 판결은 다름 아닌 사형이었다? 김홍집 내각의 거짓 주장으로 죄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폐서인된 명성황후. 명성황후의 누명을 벗긴 것은 서양인 목격자들의 증언이었다. 그렇게 을미사변 이후 55일이 지나고 나서야 공식적으로 발표된 명성황후의 죽음. 하지만 제대로 된 국장을 치른 건 이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거친 뒤의 일이었다. 

고종의 승부수, 대한제국 선포

1896년 2월 11일,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향한 고종. 이는 흥선대원군의 섭정과 친일 내각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종의 선택이었다. 아관파천의 결과로 김홍집 내각이 종결되고, 경운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황후로 격상된 명성황후. 그렇게 을미사변 이후 2년 2개월 만에 명성황후의 장례가 치러진다. 장례에 사용된 양초 값만 6,500달러?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진 명성황후의 국장! 그 안에 숨겨진 고종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13년의 역사, 대한제국이 남긴 것

망국의 군주로 세상을 떠난 고종. 하지만 고종의 죽음은 3.1 운동을 확산시키며 독립운동의 불씨를 일으킨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대한(大韓)이라는 국호와 태극기를 남긴 13년의 짧은 역사. 지금의 우리가 기억해야 할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향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1월 15일 밤 9시 40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396회 산 자들의 정치, 조선왕릉 ③ 편 <명성황후의 시신을 수습하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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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C뉴스ㅣCBCNEWS 박은철 기자 press@cbc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