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돈내산 추천도서]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법의 이름으로 억압에 동조하는 사법부의 실체

2025-04-26     한종구 기자

[CBC뉴스] 억압적 정권의 법적 지원을 받은 사법부의 문제점을 지적한 신간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이 출간됐다. 저자 한스 페터 그라베르 교수는 이 책에서 사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억압적 정권을 지지하는 실상을 고발한다.

그라베르 교수는 나치 독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라틴아메리카의 군사독재 정권은 물론 미국과 영국 등 자유주의 체제 국가의 사례를 들어, 국민을 억압하는 정권에 협력하는 판사들의 행태를 비판한다. 그는 "많은 판사가 재판을 통해 억압적 법률을 지지하고 폭정을 정당화하면서도, 오히려 자신이 법치주의를 수호한다고 믿는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정부의 구금 명령을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한 영국 상원의 결정과, 지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미국 대법원의 강제 불임수술 정당화 판결을 들었다. 이러한 판결들은 모두 형식상 합법의 겉모습을 갖췄지만, 실질적으로는 인권을 유린하고 억압에 가담한 판결이었다고 그는 비판한다.

또한, 판사들이 독재 정권의 법을 단순히 시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적 창의성'을 발휘해 억압에 앞장서는 경우도 있다고 지적한다. 유대인과 독일인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나치의 '뉘른베르크혈통보호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독일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유대인과 독일인의 혼인을 금지한 것이 그 예이다.

그라베르 교수는 판사들이 억압에 동조하는 이유 중 하나로 '계급적 이해관계'를 꼽는다. 엘리트 계층인 판사들은 경력과 승진을 위해 권위주의 정부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판사라는 직업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판사는 본질적으로 법의 권위에 복종하는 존재이기에, 권위주의 정권이 만든 실정법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억압에 동조한 판사들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은 이러한 행태를 더욱 조장한다. 그라베르 교수는 "판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난 정권의 악행과 억압에 가담한 책임을 묻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도 나치 독일에 동조한 책임을 물어 처벌된 판사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라베르 교수는 억압에 저항한 판사들의 존재도 강조한다. 나치 독일에서 정신질환자 안락사 프로그램에 항의한 로타 크라이지히 판사, 나치 점령군에 반대하며 집단 사임한 노르웨이 대법관들, 인종차별 법 적용을 거부한 벨기에 법원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법부가 극한의 상황에서도 정의를 지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다고 그는 전한다.

'정의를 배반한 판사들'은 사법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며, 독자들에게 사법체계의 공정성과 정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억압적 정권과 그에 협력한 사법부의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현재의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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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한종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