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만원 쿠폰 봉투를 열었을 때'
[CBC뉴스] 마트 계산대에서 경품으로 받은 쿠폰 봉투를 열었을 때, 현금 대신 특정 코너에서만 쓸 수 있는 할인권이 여러 장 들어 있다면 어떨까. 식료품 코너 5000원, 배달 코너 5000원, 여행 코너 2만원, 명품 코너 2만원. “다 합쳐 총 5만원입니다” 숫자는 맞지만, 그 순간 소비자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애걔' 또는 '달랑'이라는 실망스러운 반응이 나올 만한 정보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고객 1인당 ‘구매이용권 5만원’. 그러나 구성은 전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알럭스 2만원으로 쪼개졌다. 총액만 보면 큼직하지만, 실제로 손에 쥔 느낌은 '빈약'한 편이다.
문제의 본질은 사고의 성격에 있다. 이번 사안은 배송 지연이나 서비스 오류가 아니라 개인정보 유출이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여파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이런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제시된 것이 현금도, 통합 포인트도 아닌 ‘용도 제한 쿠폰 세트’라는 점에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프로모션'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더욱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살펴보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에게 2만원씩 배정된 이용권은 실질 가치가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5만원 보상’이라는 표현과 달리, 많은 고객에게 체감되는 보상은 5000원이나 1만원 수준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보상은 피해를 입은 쪽의 선택권을 넓히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안은 소비자가 쿠팡 생태계 안에서 추가 지출을 해야만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구조다. 책임의 표현이라기보다, 사고 이후에도 소비를 이어가게 만드는 장치처럼 보이는 이유다. 쌍방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일방성에 고개를 갸웃하는 소비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쿠팡은 그동안 ‘고객 중심’을 반복해 강조해왔다. 그렇다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중대한 사고 앞에서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숫자는 5만원이지만, 신뢰 회복의 무게는 그보다 훨씬 무겁다. 이번 보상안은 그 간극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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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권오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