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家]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세 권의 책
2026. 09. 09
“나이가 들어도 인생에 ‘방학’은 필요하다” 35년 차 번역가 권남희가 떠난 도쿄 한 달 살이
해야 할 일은 때가 되면 어떻게든 하게 되지만, 하고 싶은 일은 좀처럼 때가 오지 않는다.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는 그 ‘때’를 더 이상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10년 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버킷 리스트 ‘도쿄 한 달 살이’를 생애 첫 안식월에 실현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라 더 늦기 전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한 달은 오래 미뤄둔 꿈을 지금 실행하는 것에 대한 유쾌하고 씩씩한 기록이 됐다.
스물다섯 살에 번역을 시작해 35년간 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등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겨온 권남희에게 도쿄는 남다른 의미를 가진 도시다. 작품 속에서 만났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고,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온 작가와 편집자를 만나며, 일본에 번역 출간된 자신의 책을 들고 현지 독자들과도 만난다. 하지만 일본문학을 300권 넘게 번역한 베테랑의 여행이라고 해서 모든 일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타고난 길치에 혼밥도 어려운 내향인인 그의 여행은 매일같이 헤매고 쭈뼛거리는 좌충우돌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길을 잃는 순간조차 권남희에게는 여행의 일부가 된다. 하루 2만 2000보를 걸으며 헤매고, 숙소로 돌아와 구글맵을 켜고 그날의 동선을 ‘복기’하면서도 그는 다시 길을 나선다. 좋은 곳에 가면 세상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고, 딸의 안부에 울컥하고, 오래된 친구들과 부모 돌봄과 나이 듦을 이야기한다. 스무 살의 여행이 설렘으로 가득하다면 ‘이 나이’의 여행에는 아쉬움과 후회, 애틋함과 감사가 함께 들어 있다.
『안식월 일기』가 전하는 것은 완벽한 한 달 살이의 노하우가 아니다. 불안해도 일단 해보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웃어넘기며, 나이가 들어도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포기하지 않는 삶의 태도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질문 앞에서 저자는 거창한 답 대신 비행기표부터 끊었다. 해야 할 일에 익숙해질수록 하고 싶은 일을 뒤로 미루게 되는 우리에게, 이 책은 묻는다. 우리에게도 조금 늦은 인생의 방학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2026. 09. 05
35년 동안 번역한 책들이 한 달의 여행으로 돌아왔다, 『안식월 일기』
한 사람의 직업이 30년 넘게 이어지면 그 시간은 어디로 돌아올까.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의 첫 안식월은 그 답을 보여준다. 35년 동안 일본의 책을 우리말로 옮겨온 그는 생애 처음으로 한 달간 도쿄에서 살아보기로 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지내는 동안 그가 만난 것은 유명한 관광지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번역해온 작품과 작가, 편집자, 독자 그리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하는 수많은 인연이었다.
권남희는 무라카미 하루키, 마스다 미리, 오가와 이토 등의 작품을 비롯해 300권에 가까운 일본문학을 우리말로 옮겨온 번역가다. 그래서 도쿄 곳곳에는 그의 번역 인생과 겹쳐지는 장소가 있다. 『츠바키 연애편지』를 번역하며 찾았던 동네를 직접 걷고, 마스다 미리가 좋아하는 디저트 가게를 찾아가고, 오랫동안 작품을 번역해온 오가와 이토의 집에 초대받는다. 일본에 번역 출간된 자신의 에세이 북토크에서 현지 독자를 만나고, 쇼가쿠칸 회장을 만나는 뜻밖의 순간도 찾아온다.
하지만 『안식월 일기』는 성공한 번역가의 특별한 여행담만을 담은 책이 아니다.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고, 혼자 밥을 먹는 일에 쭈뼛거리고, 여행 중 지진을 겪고, 딸과의 여행에서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속상해하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마주한 엄마의 부재와 나이 듦에 대한 생각까지, 화려한 여행의 이면에 있는 삶의 감정들이 솔직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이 책의 도쿄는 관광지가 아니라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비추는 공간이 된다.
결국 저자가 한 달 동안 확인한 것은 오래 좋아하고 오래 해온 일은 언젠가 뜻밖의 인연과 기쁨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길을 찾는 데는 서툴렀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충실했던 사람. 『안식월 일기』는 그런 권남희의 삶을 웃음과 뭉클함 사이에서 보여준다. 완벽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조금 헤매더라도 지금 떠나는 여행이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도 새로운 ‘처음’은 가능하다는 것을 유쾌하게 전하는 에세이다.
2026. 09. 04
두 번의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통과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지막 기록 『어제의 세계』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온한 일상도 언젠가는 ‘어제의 세계’가 될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는 20세기 초 유럽의 평화로운 일상과 문화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무너지는 과정을 한 인간의 기억으로 기록한 회고록이다. 이성, 진보, 자유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던 시대와 그 믿음이 전쟁과 전체주의 앞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과정을 한 생애 안에서 목격한 지식인의 증언이다.
츠바이크가 기억하는 빈은 예술과 문화가 꽃피던 도시였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청년기, 파리에서의 생활과 유럽 곳곳으로의 여행,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전쟁 이후의 혼란까지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차례로 돌아본다. 개인의 성장 과정은 곧 유럽의 역사와 겹쳐진다. 한때 안정과 번영을 누리던 사회가 민족주의와 파시즘, 나치즘의 확산 속에서 점차 변해가는 모습도 함께 담긴다.
그렇다고 이 책이 과거에 대한 향수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츠바이크는 자신이 믿었던 세계가 무너지는 과정을 바라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동시에 얼마나 강인하게 시련을 견딜 수 있는지를 기록한다. 그는 문화와 문명이 단단한 토대 위에 서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시대의 변화에 휩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어제의 세계』가 오늘 다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는 달라졌지만 인간은 여전히 평온이 영원할 것이라 믿고, 익숙한 일상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츠바이크는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를 기록함으로써 우리가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30여 년 만에 새로운 번역으로 돌아온 이번 책은 한 시대의 아름다움과 그 시대를 무너뜨린 야만을 함께 기억하며, 우리가 어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고전이다.
2026. 08. 30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은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일한 회고록
한 작가가 자신의 시대를 기록한다는 것은 곧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마지막 모습을 남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는 20세기 초 유럽을 대표했던 작가가 자신의 유년기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를 되돌아본 유일한 회고록이다. 그는 평온했던 유럽의 일상과 문화가 전쟁과 전체주의의 등장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고, 그 기억을 마지막 기록으로 남겼다.
1881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츠바이크는 철학과 문예학을 공부하고, 소설과 평전을 넘나들며 20세기 초 유럽을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했다. 『체스 이야기』, 『낯선 여인의 편지』 등의 작품과 역사적 인물의 삶을 다룬 평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는 작가’로 꼽히기도 했다. 그의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시대의 변화와 인간 사회의 모습을 예민하게 포착했다.
그런 츠바이크가 마지막으로 돌아본 것은 자신이 잃어버린 ‘어제의 세계’였다. 자유주의와 낙관주의를 믿었던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균열을 맞았고, 이후 파시즘과 나치즘,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또 한 번 거대한 파국을 향해 나아갔다. 츠바이크는 그 변화를 단순히 역사의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친구와 지식인들의 삶, 예술과 문화의 변화, 자신이 경험한 일상의 풍경을 통해 한 시대가 어떻게 서서히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끝내 이 책의 출간도, 세계대전의 종전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삶과 일상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았다. 『어제의 세계』는 그래서 단순한 회고록을 넘어 한 시대를 살아낸 지성인의 유언과도 같은 기록으로 남는다. 30여 년 만에 독일어 원문을 새롭게 완역한 이번 개정판은 츠바이크가 기억하고자 했던 세계를 다시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아름다웠던 과거를 기억하는 동시에, 그 세계를 무너뜨린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다.
2026. 08. 31
“철학자도 사랑하고, 싸우고, 술을 마셨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출간
철학자라고 하면 어려운 개념과 무거운 문장부터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 속 철학자들은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카페에 앉아 커피와 와인을 마시며 토론했고, 자주 취하고 사랑에 빠졌다. 그들에게 철학은 현실과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싸우는 삶 한가운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저자 세라 베이크웰은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하이데거, 메를로퐁티 등 20세기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함께 따라간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철학자들을 위대한 사상가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어버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카뮈는 친구들 앞에서 유쾌한 사람이었고, 사르트르는 돈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으며, 보부아르는 궁핍한 점령기에도 놀라운 생활력을 발휘했다.
특히 책은 철학자의 사상과 성격, 인간관계가 서로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 카뮈와의 우정과 갈등, 하이데거가 나치와 연루되었던 역사적 맥락까지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던 ‘자유’, ‘책임’, ‘존재’ 같은 개념이 구체적인 인간의 선택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베이크웰이 도달한 결론은 단순하다. “생각은 흥미롭지만, 인간은 훨씬 더 흥미롭다.” 철학을 만든 사람들의 불완전함과 모순, 사랑과 우정, 실수와 갈등까지 들여다볼 때 그들의 사상이 오히려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철학자를 박제된 거장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삶을 살아간 한 인간으로 되돌려놓으며, 철학을 보다 가까이에서 만나는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2026. 08. 24
전쟁과 혼란의 시대를 통과한 실존주의자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존주의자들이 던진 이 질문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낡지 않았다. 자유와 책임, 존재와 선택을 고민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통과하며 만들어졌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실존주의를 어려운 철학 이론으로 설명하는 대신, 그 질문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세라 베이크웰이 그려내는 무대는 20세기 초반의 파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카페에서 만나 끊임없이 읽고 쓰고 토론했다. 그러나 이들의 사유는 한가한 지적 유희가 아니었다. 파시즘과 전쟁, 점령과 해방, 냉전이라는 격변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기에 철학은 곧 삶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실존주의를 과거의 철학으로 가두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수정했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과거 입장을 뒤집었다. 베이크웰은 이를 경박함으로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계속해서 다시 생각하고 다시 선택할 수 있는 태도야말로 자유의 한 모습이라고 바라본다. 한 번 정한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는 것보다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다시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수많은 선택 앞에 놓여 있다. 무엇을 믿을지, 어떤 삶을 살지, 사회의 문제에 어떻게 책임질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은 정답을 대신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질문하고 선택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오래된 철학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다시 읽힌다. 전 세계 언론이 이 책을 오늘날에도 유효한 실존주의 입문서로 평가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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