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 아이돌이란 암묵적 룰을 깬 파격, K팝 산업의 새로운 기준을 제공한 리센느

2026-09-15     심우일 기자
리센느.

[CBC뉴스] 거제 사투리를 쓰는 아이돌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걸그룹 리센느의 리더 원이가 자신의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경상남도 거제 억양 그대로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면서, K팝 산업이 오랫동안 지켜온 암묵적 룰 하나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돌은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룰이다.

K팝 아이돌 산업은 지난 수십 년간 완성도 경쟁을 벌여왔다. 발음, 억양, 말투까지 다듬어진 표준어 화법은 군무의 칼각, 인형 같은 비주얼과 함께 아이돌 완성도를 가늠하는 기본값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이 완성도가 산업 전체의 표준이 되면서 오히려 차별화 지점을 지워버렸다는 데 있다. 모든 그룹이 비슷한 수준으로 완벽해질수록, 대중이 특정 그룹을 기억할 이유는 줄어들었다. 최근 수년간 K팝 신인 그룹들이 데뷔 초기 유의미한 화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조용히 활동을 이어가는 사례가 반복된 배경에도 이 완성도 경쟁의 포화가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리센느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더뮤즈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2024년 3월 데뷔한 이 5인조 걸그룹은 데뷔 초기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흐름이 바뀐 건 리더 원이의 개인 유튜브 콘텐츠였다. 거제 토박이인 원이가 사투리 억양을 감추지 않고 방송에 임하는 모습, 그리고 이 과정에서 파생된 거제 야호라는 밈이 온라인 전반으로 퍼지면서 팀 전체의 화제성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이 밈은 연예계를 넘어 정치권과 방송가로까지 번져, 배우들이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제 야호 포즈를 따라 하는 장면까지 나왔다.

이 확산의 핵심은 사투리 그 자체가 아니라 사투리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움이었다. 표준어 화법으로 다듬어진 기존 아이돌 문법과 달리, 리센느 멤버들은 편집되지 않은 날것의 말투와 반응을 그대로 노출했다. 갸루 화장, 지역색이 짙은 유행어, 다듬어지지 않은 리액션이 결합된 콘텐츠는 기존 10대·20대 아이돌 소비층을 넘어 30대 이상 팬덤까지 끌어들였다. 리센느 콘텐츠를 활용한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출시 직후 전 연령대 인기 순위 1위에 오른 사례는 이 확산 범위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화제성은 곧 실적으로 이어졌다. 기존 발표곡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며 1위권에 재진입했고, 신곡 흥행과 음악방송 성과, 광고 러브콜이 뒤따랐다. 소속사 더뮤즈엔터테인먼트 임원이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흥행 이후 광고 문의가 100건 넘게 들어왔다고 밝힐 정도로 산업적 파급력도 컸다. 리센느의 서사는 이른바 중소돌의 기적이라는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다만 이 파격이 논란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원이가 사용한 경상도 사투리 표현을 두고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 말투와 연관 짓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치권까지 가세한 논쟁으로 번진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해당 표현이 경남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쓰여온 일상적 방언이라는 반박이 이어졌고, 거제 출신 아이돌을 향한 과도한 검열이라는 비판 여론도 형성됐다. 사투리를 무기로 삼은 콘셉트가 역설적으로 사투리에 대한 편견과 다시 마주해야 했던 셈이다.

리센느 현상이 K팝 산업 전반에 던지는 시사점은 단순한 콘셉트 차별화를 넘어선다. 표준화된 완성도가 곧 매력이라는 공식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 그리고 개인 유튜브 콘텐츠에서 시작된 밈 하나가 정규 활동 전체의 흥행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형 기획사 중심으로 짜여 있던 K팝 산업 구조에서 중소 기획사가 콘텐츠 기획력만으로 존재감을 키울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리센느 이후 여러 중소 기획사가 소속 아이돌의 개인 콘텐츠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 흐름을 곧바로 하나의 산업 공식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원이의 사례가 특정 개인의 캐릭터성과 오랜 시간 쌓인 멤버 간 케미에서 비롯된 결과이지, 기획으로 재현 가능한 공식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사투리나 편집되지 않은 리액션을 인위적으로 콘셉트화할 경우 오히려 부자연스럽다는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기획사 입장에서는 이미 구축된 완성도 중심의 브랜드 이미지를 흔들지 않는 선에서 이런 흐름을 어디까지 받아들일지도 고민거리다. 결국 리센느 현상이 산업 전반에 남길 유산은 사투리라는 콘셉트 자체가 아니라,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도 하나의 콘텐츠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에 가깝다는 평가가 많다. 

이 인식이 얼마나 넓게, 얼마나 오래 산업 안에 자리 잡을지는 아직 열린 질문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 흐름이 일회성 화제를 넘어 산업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변수로는 우선 후속곡과 컴백 활동에서 현재 화제성이 실질적인 음악 성과로 이어질지, 소속사의 후속 라인업이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지, 콘셉트를 둘러싼 논란이 장기적으로 그룹 이미지에 부담으로 작용할지 여부가 있다. 

리센느의 사례가 K팝 산업의 새로운 기준으로 남을지, 특정 시점의 이례적 흥행 사례로 그칠지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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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