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윤 변호사의 알法 모를法] 고소② 고소장 30쪽보다 중요한 한 장…경찰은 무엇부터 볼까
[CBC뉴스] “피고소인은 저를 속였습니다. 너무 억울합니다.”
분명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범죄사실’이 되기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속였는지, 그 말을 왜 믿었는지, 그 결과 어떤 행동을 했고 어떤 재산이 상대방에게 넘어갔는지가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회에서는 진술서가 자신이 경험한 사실을 설명하는 문서라면, 고소장은 범죄사실을 밝히고 상대방의 처벌을 구하는 문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고소장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사실’은 도대체 무엇일까.
형법에는 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 있다. 이를 구성요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고소장에서 말하는 범죄사실은 단순히 “사기를 당했다”, “횡령을 했다”고 죄명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적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사기죄를 예로 들어보자. 사기죄에서는 상대방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거나 중요한 사실을 숨기는 등의 기망행위를 하고, 피해자가 그 말에 속아 착오에 빠져 재산을 처분하고, 그 결과 상대방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따라서 “피고소인이 돈을 갚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돈을 받기 전에 피고소인이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그 말 가운데 무엇이 사실과 달랐는지, 고소인이 그 말을 믿었기 때문에 돈을 지급했는지 등이 드러나야 한다. 이런 사실들이 바로 사기죄의 구성요건과 연결되는 범죄사실이다.
좋은 고소장은 이 부분이 한눈에 보인다.
수사관 입장에서도 범죄사실이 명확하게 정리된 사건은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반대로 피해자의 사연은 30쪽에 걸쳐 자세히 적혀 있는데 정작 어느 행위가 어떤 범죄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찾기 어렵다면 수사의 출발부터 복잡해진다.
그래서 고소장을 작성할 때는 먼저 법률의 구성요건과 사실관계를 맞춰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범죄를 구성하는 각각의 사실이 무엇인지 정리하고, 그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예를 들어 사기죄의 기망행위에 해당하는 카카오톡이 있다면 해당 대화내용을 증거로 연결하고, 송금 사실은 계좌거래내역으로 확인하면 된다. 그런데 중요한 구성요건사실을 고소인이 직접 입증할 자료가 없는 경우도 있다. 상대방 계좌의 자금 흐름이나 공범과의 관계처럼 피해자가 확보하기 어려운 자료가 대표적이다.
이럴 때는 사실을 추측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부분에 어떤 수사가 필요한지를 명확하게 요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잘 작성된 고소장은 ‘범죄사실-증거-수사요청’이 서로 연결돼 있다.
법조문이나 판례를 많이 넣는다고 반드시 좋은 고소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법률적 쟁점이 있는 사건이라면 필요한 판례와 법리를 제시해야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내 사건의 사실이 해당 범죄의 구성요건에 어떻게 들어맞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점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2026년 10월 2일부터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체계가 시행된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송치사건에 대한 직접 보완수사의 법적 근거를 삭제하고, 수사의 주체를 사법경찰관으로 일원화한다.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거나 재수사를 요구하는 제도는 남지만, 고소사건의 수사가 처음 시작되는 경찰 단계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는 피해자가 제출하는 첫 고소장이 단순한 신고서 이상의 역할을 한다. 어떤 범죄인지, 어떤 사실을 확인해야 하는지, 어떤 증거가 있고 무엇을 추가로 수사해야 하는지가 처음부터 정리돼 있다면 수사관도 사건의 핵심을 훨씬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고소장은 길게 쓰는 문서가 아니다. 법률이 요구하는 범죄사실을 정확히 찾아내고, 그 사실을 증거와 수사로 연결하는 문서다. 30쪽의 사연보다 잘 정리된 한 장의 범죄사실이 더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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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박지윤 담덕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