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서 몸을 낮춘 리센느…‘큰절’이 보여준 K팝 팬덤의 관계사회학
[CBC뉴스] 걸그룹 리센느(RESCENE)가 음악방송 1위에 오른 뒤 보여준 큰절이 오래 회자되고 있다. 1위라는 결과도 중요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정상에 오른 순간 오히려 몸을 낮췄다는 데 있었다. 트로피를 손에 쥔 뒤 환호하는 대신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고 멤버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팬들도 울컥했다. 온라인에서는 “1위하고 큰절하는 아이돌이 귀하다”, “걸그룹이 1위하고 큰절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다”는 취지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장면을 단순히 ‘예의 바른 걸그룹의 팬서비스’ 정도로만 읽으면 리센느를 둘러싼 최근의 반응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큰절은 하나의 행동이었지만 그 뒤에는 간절함과 감사라는 두 개의 감정이 겹쳐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리센느의 돌풍을 바라볼 중요한 단서가 발견된다.
지금의 아이돌 산업은 완성된 스타를 생산하는 거대한 시스템에 가깝다. 데뷔 전부터 세계관과 콘셉트가 설계되고 티저와 숏폼이 공개된다. 데뷔하는 순간부터 글로벌 시장을 바라보며 음악과 패션, 퍼포먼스와 SNS 전략까지 정교하게 움직인다. 신인조차 처음부터 완성형을 요구받는다. 그런 환경에서는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미 성공할 준비가 돼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런데 리센느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에는 조금 다른 정서가 흐른다. 완성된 스타를 감상하는 것보다 성장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감정에 가깝다. 리센느의 공식 팬클럽인 ‘리마인’을 비롯한 팬들의 반응에서 반복되는 말도 비슷하다. 간절하다. 기특하다. 고생했다. 잘됐으면 좋겠다. 오래 활동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반적인 스타 소비의 언어와 미묘하게 다르다. ‘멋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됐으면 좋겠다’로 이어진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크다. 스타를 동경하는 감정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성공을 자신의 일처럼 바라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리센느의 큰절은 바로 이 감정을 한순간에 폭발시킨 장면이었다.
팬들이 시간을 쓰고 투표하고 음악을 듣고 영상을 찾아보는 것은 오늘날 아이돌 산업에서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팬의 입장에서 그 시간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하루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정된 시간 가운데 몇 분을 한 가수의 음악을 듣는 데 사용하고, 영상을 찾아보고, 무대를 기다리고, 댓글을 남기고, 투표에 참여한다. 결국 팬덤이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 일부를 특정한 가수에게 내어주는 행위의 집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냥 지나갈 수 있는 하루를 저에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표현은 묵직하다. 팬의 하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히기 때문이다. 팬덤의 규모가 숫자로 표시되는 시대다. 조회수 몇백만, 팔로워 몇백만, 앨범 몇십만 장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100만 조회수라는 숫자를 적는 순간 100만 번의 클릭 뒤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사람과 그들이 내어준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리센느의 큰절은 그 관계를 잠시 거꾸로 돌려놓았다. ‘팬이 우리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가 아니라 ‘당신이 우리에게 시간을 내준 것이 감사하다’는 관계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 큰절은 단순한 예절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간 순간 가장 낮은 자세를 취했다는 역설 때문이다.
대중문화에서 스타는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야 하는 존재다. 더 높은 순위, 더 큰 공연장, 더 많은 판매량, 더 많은 팔로워를 향해 움직인다. 1위는 그 상승의 정점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리센느는 바로 그 순간 몸을 낮췄다. 그 행동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는지 순간적으로 나온 것이었는지를 외부에서 단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팬들이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다.
팬들은 큰절을 통해 자신들의 응원이 실제로 전달됐다는 감각을 얻었다. 자신들이 보낸 시간이 가수에게 도착했고 그곳에서 감사라는 형태로 되돌아왔다는 느낌이다. 스타와 팬 사이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바로 이 ‘왕복’에 있다. 팬이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스타가 일방적으로 사랑받는 관계만으로는 공동체적 감정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응원이 올라가고 감사가 내려와야 한다. 팬이 시간을 보내고 가수가 그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그 관계가 확인되는 순간 팬덤은 단순한 소비자 집단을 넘어선다. 리센느의 큰절은 그 왕복을 눈으로 보여줬다. 팬들은 단순히 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낸 시간이 인정받았다고 느꼈을 수 있다.
리센느를 둘러싼 팬 반응에서 ‘삼촌’, ‘이모’, ‘조카’ 같은 표현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성공한 스타를 숭배하기보다 성장하는 사람을 응원하는 감정에 가까운 표현이다. ‘내가 좋아하니까 최고다’보다는 ‘고생했으니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 감정은 생각보다 강하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에게 감탄하지만 성장하는 존재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한다. 완성된 스타에게 박수를 보낼 수 있지만 힘들게 한 계단씩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서는 자신의 시간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래서 리센느의 1위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 눈물을 반드시 아이돌만을 위한 눈물이라고 볼 필요도 없다. 오랫동안 노력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던 경험, 인정받지 못했던 시간, 한 번쯤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던 기억이 리센느의 모습과 겹쳐졌을 수도 있다. 누군가의 성공이 타인의 위로가 되는 순간이다.
리센느의 서사는 그래서 단순한 ‘중소 걸그룹의 성공담’으로 소비하기에는 조금 더 넓은 의미를 갖는다. 압도적인 배경이나 규모보다 과정과 태도에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응원할 수 있는 존재가 귀하다”거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그룹”이라는 취지의 팬 반응이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노력과 결과는 언제나 비례하지 않는다. 열심히 했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반드시 기회가 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오랜 노력이 결과로 이어지고, 그 사람이 그 결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 리센느의 1위와 큰절은 바로 그 정서를 건드렸다.
그런 점에서 큰절은 리센느 돌풍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기보다 리센느가 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상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콘텐츠는 네티즌 어워즈에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스타들을 조명한 기사입니다. 네티즌 어워즈는 투표권을 판매하지 않고 모든 이용자에게 동일한 투표 기회를 제공하는 온라인 팬 투표 플랫폼입니다. 자본이 아닌 팬들의 자발적이고 꾸준한 참여로 순위가 결정되며, 누적 7800만표는 팬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이 쌓아 올린 순수 팬심의 기록입니다. AI가 일부 조력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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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