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家] 상실부터 자기극복까지, 삶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책 3
2026. 10. 01.
2026 퓰리처상 수상 작가 이윤 리가 쓴 가장 깊은 슬픔의 기록
2026년 미국 퓰리처상과 앤드류 카네기 메달을 수상하고, 2025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이윤 리의 책이 국내에 출간됐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세계적인 소설가인 이윤 리가 두 아들을 잃은 뒤 쓴 회고록이자 존재론적 에세이다. 상실을 다룬 수많은 책이 슬픔을 위로하거나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이 책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쉽게 위로하지 않고, 설명으로 덮지 않으며, 고통이 있는 자리에서 삶이 어떻게 계속되는지를 끝까지 바라본다.
이윤 리는 197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베이징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면역학을 공부했다. 아이오와대학교 작가 워크숍에서 소설 창작을 시작한 그는 첫 소설집 『천년의 기도』로 가디언지 퍼스트 북 어워드를 비롯해 캘리포니아 북 어워드, 프랭크 오코너 국제 단편소설상, 펜/헤밍웨이상 등을 받으며 영미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그런 작가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경험을 문학의 언어로 옮긴 작품이다.
책은 2024년 2월 경찰이 작가의 집을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윤 리는 두 아들을 잃은 부모로서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아이들의 죽음과 자신이 느끼는 슬픔, 죄책감과 사랑을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그러나 이 책에서 슬픔은 하나의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자녀를 이해하고 싶지만 끝내 알 수 없는 부분, 부모가 아무리 사랑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삶, 남겨진 사람이 계속해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겹겹이 쌓인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정원의 식물과 자연을 바라본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문장은 희망이나 재생을 상징하는 낙관적인 문구가 아니다. 식물은 자랄 수 있을 때 자라고, 그렇지 않을 때 휴면하며, 결국 자연이 정한 때에 죽는다. 이윤 리는 그 단순한 사실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본다.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가 오래 남기는 것은 상실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했던 존재를 잃은 뒤에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은 여전히 오늘을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2026. 09. 30.
두 아들을 잃은 소설가가 심연의 자리에서 써 내려간 존재론적 에세이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
슬픔에는 시간이 지나면 끝난다는 공식이 없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뒤 남겨진 사람에게 삶은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이윤 리의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두 아들을 잃은 작가는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상실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신, 그 일이 벌어진 뒤에도 계속되는 일상을 기록한다. 아이가 떠난 뒤에도 아침은 오고, 정원의 식물은 자라고, 남겨진 사람은 먹고 자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책에서 작가는 부모로서 품게 되는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내가 아이를 더 잘 이해했다면 달라졌을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디까지 한계가 있는가. 자녀가 느끼는 세계의 낯섦과 고통을 부모가 끝내 알 수 없다면,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는 쉽게 답할 수 없다. 이윤 리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고, 오히려 답할 수 없는 질문을 그대로 남겨둔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은 위로를 약속하기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한다.
그 중심에 정원이 있다. 작가는 아이들이 떠난 뒤에도 자라는 꽃과 식물을 바라보며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고 생각한다. 정원은 희망이나 재생의 상징이 아니다. 꽃은 슬퍼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자랄 수 있을 때 자라고, 자랄 수 없을 때는 휴면하며, 언젠가 죽는다. 자연은 인간에게 의미를 설명하지 않지만 그저 자신의 시간을 살아간다. 이 단순한 움직임은 상실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겹쳐진다.
그래서 『자연의 것들은 그저 자란다』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분리된 주제가 아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곧 살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묻는 일이 되고, 떠난 아이들을 기억하는 일은 그들과 함께했던 사랑을 현재형으로 남기는 일이 된다. 이 책은 슬픔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는다. 다만 어떤 고통을 안고서도 사람은 계속 살아가며, 사랑했던 존재와 함께한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 점에서 이윤 리의 회고록은 상실에 관한 책인 동시에, 끝내 삶을 놓지 않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2026. 09. 24.
철학을 삶의 언어로 풀어내는 작가 강용수, 이번에는 니체를 읽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로 철학을 삶의 언어로 풀어낸 강용수 저자가 이번에는 니체를 들고 돌아왔다. 신간 『니체 초인 수업』은 고려대 연구교수로 니체를 연구해온 저자가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바탕으로 ‘초인’의 철학을 오늘의 삶에 연결해 풀어낸 책이다. 전작을 통해 삶의 고통을 바라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그 고통을 마주한 이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니체의 사유를 따라 질문한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흔히 생각하는 ‘강한 인간’과 다르다.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도, 모든 약점을 극복해 더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의 자신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에 있는 인간이다. 강용수는 이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핵심적인 질문들을 통해 풀어낸다. 왜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가, 익숙한 삶을 벗어나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지금의 삶을 다시 살아야 한다면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가.
책은 니체 철학의 주요 개념을 다섯 가지 흐름으로 연결한다. 자신의 어둠과 마주하는 ‘몰락’에서 시작해 지금의 자신을 넘어서는 ‘극복’으로 나아가고, 스스로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힘에의 의지’를 거쳐 ‘영원회귀’와 ‘운명애’에 이른다. 특히 영원회귀는 지금의 삶이 끝없이 반복된다면 다시 선택할 수 있는지를 묻는 사고실험이다. 운명애는 이미 주어진 삶을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그 삶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태도로 제시된다.
강용수는 니체 철학을 어려운 이론으로만 설명하기보다 독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질문으로 바꾸어 제시한다. 그래서 『니체 초인 수업』에서 중요한 것은 니체의 철학을 완벽하게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그 질문 앞에 자신의 삶을 세워보는 경험이다. 전작에서 ‘인생은 고통’이라는 질문을 마주하게 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그다음 질문을 건넨다. 고통과 허무를 마주한 뒤에도, 나는 지금의 삶을 다시 선택할 수 있는가.
더 강한 사람이 되는 법이 아니라,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묻는 『니체 초인 수업』
‘초인’이라는 말은 이제 일상에서도 낯설지 않다.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거나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돌파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처럼 쓰이지만, 니체가 말한 초인, ‘위버멘쉬’의 의미는 이와 다르다. 강용수의 신간 『니체 초인 수업』은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초인의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 니체가 말한 ‘자신을 넘어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니체에게 초인은 완성된 인간이나 특별한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는 과정에 있는 인간에 가깝다. 지금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삶을 의심하고, 남이 정해준 가치에 자신을 맞추는 대신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초인이 되는 길은 정답을 외우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데서 시작된다. ‘왜 자신의 길을 가지 않는가’, ‘지금의 삶에 진정 만족하는가’, ‘이 삶이 반복된다면 다시 선택할 수 있는가’ 같은 질문이 그 출발점이다.
책은 초인 철학을 하나의 삶의 훈련으로 풀어낸다. ‘몰락’에서는 자신의 어둠과 마주하고 익숙한 삶에서 벗어날 용기를 살펴보고, ‘극복’에서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을 인정하며 끊임없이 변화할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이어 ‘힘에의 의지’, ‘영원회귀’, ‘운명애’를 통해 삶을 긍정하고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짚는다. 고통과 실패, 상실과 허무를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만 보지 않고 그것까지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을 수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니체 초인 수업』이 궁극적으로 던지는 질문은 거창하지 않다. ‘나는 지금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초인이 된다는 것은 남보다 높은 곳에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스스로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은 초인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라기보다, 니체의 문장을 따라가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선택해보는 철학 수업에 가깝다.
2026. 09. 16.
평온했던 세계는 어떻게 하루아침에 무너졌을까, 츠바이크가 기록한 유럽의 몰락
20세기 초 유럽에는 이성과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국경을 넘어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예술과 학문이 꽃피던 시대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부상은 그 믿음과 일상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일한 회고록 『어제의 세계』는 바로 그 변화의 한가운데를 살아간 한 인간의 기억을 기록한 책이다. 유년 시절부터 전쟁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삶과 유럽의 역사가 촘촘하게 겹쳐진다.
츠바이크가 기억하는 ‘어제의 세계’는 세기말 빈에서 시작된다. 젊은 시절의 그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유럽의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성장했고, 파리와 여러 유럽 도시를 오가며 국경을 넘어 연결된 세계를 경험했다. 책에는 릴케, 로댕, 프로이트, 로맹 롤랑 등 당대 문화예술계 인물들과의 만남도 등장한다. 한 개인의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한 시대의 문화와 지성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유다.
하지만 1914년 전쟁이 시작되면서 세계의 질서는 달라진다. 한때 당연하게 여겼던 평화와 자유는 흔들리고, 유럽을 하나로 연결하던 문화적 교류 역시 단절된다. 이후 히틀러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은 츠바이크가 믿었던 세계를 더욱 깊이 파괴한다. 『어제의 세계』는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연대순으로 설명하기보다 그 사건들이 한 사람의 삶과 감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따라간다. 그래서 전쟁의 역사는 숫자와 연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일상과 관계, 신념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이 회고록에는 과거를 향한 향수만 남아 있지 않다. 츠바이크는 가장 혼란스러운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삶과 일상을 향한 사랑, 인간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았다. 그는 이 책이 출간되는 것도, 세계대전이 끝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1942년 세상을 떠났다. 개인의 기억으로 시작한 『어제의 세계』가 오늘날까지 읽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한 시대의 몰락을 기록하면서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존엄과 삶의 가치를 끝까지 바라보기 때문이다.
2026. 09. 08.
슈테판 츠바이크의 유일한 회고록 『어제의 세계』, 30여 년 만의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때로 한 시대 전체를 기록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가 그렇다.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출발한 이 회고록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나치의 등장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한 작가가 직접 통과한 20세기의 격변을 담고 있다. 20세기 초 유럽의 문화와 지성이 꽃피던 순간부터 그 세계가 전쟁과 광기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까지, 개인의 기억을 통해 한 문명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번에 출간된 『어제의 세계』는 1995년 한국어 번역판 이후 30여 년 만에 선보이는 새로운 완역판이다. 인천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이노은 교수가 독일어 원문을 새롭게 번역했으며, 736쪽에 걸쳐 츠바이크의 삶과 시대를 충실하게 담았다. 초판 한정 양장본으로 출간되어 작품을 오래 소장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한다.
책의 중심에는 ‘어제의 세계’를 살아온 한 인간의 기억이 있다. 츠바이크에게 어린 시절의 빈은 안정과 번영이 이어질 것처럼 보이는 도시였다. 문학과 예술은 국경을 넘어 교류했고, 그는 파리와 유럽 곳곳을 오가며 당대의 작가와 예술가들을 만났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가 알고 있던 세계는 빠르게 달라진다. 평화와 진보에 대한 믿음은 무너지고, 유럽의 지성계와 문화 역시 정치적 광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어제의 세계』가 특별한 것은 거대한 역사를 한 개인의 시선으로 되살린다는 데 있다. 츠바이크는 시대의 변화를 기록하면서 자신이 사랑했던 일상과 문화,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남긴다. 결국 이 책은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회고록인 동시에, 문명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언이기도 하다. 츠바이크가 생전에 책의 출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에 더욱 묵직한 의미를 더한다. 한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남은 그의 기억은 오늘의 독자에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세계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