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센느, 콘셉트가 만든 세계관과 K팝의 새로운 서사
[CBC뉴스] K팝에서 콘셉트는 아티스트를 설명하는 하나의 언어다. 음악이 청각적 경험을 제공한다면 콘셉트는 그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기억할 것인지에 관한 감각적 질서를 만든다. 콘셉트가 일회성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인 서사로 발전할 때 아티스트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다. 걸그룹 리센느(RESCENE)는 이러한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다.
원이, 리브, 미나미, 메이, 제나로 구성된 리센느는 2024년 3월 데뷔했다.
대중음악에서 콘셉트는 특정한 활동 시기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청량함과 신비로움, 강렬함과 성숙함 등 다양한 분위기가 음악과 퍼포먼스, 의상과 영상에 반영된다. 그러나 개별적인 콘셉트가 곧 세계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계관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서로 다른 음악과 이미지 사이에 일정한 연결성이 존재해야 한다.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지더라도 아티스트를 설명하는 근본적인 정체성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반드시 복잡한 이야기나 가상의 공간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감각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그 감각을 다양한 음악적 경험으로 확장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같은 노래를 듣더라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기억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계절이 생각날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특정한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이 떠오를 수 있다.
음악은 동일하지만 음악을 통해 만들어지는 기억은 서로 다른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센느의 세계관은 아티스트가 완성된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구조와 구별된다.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의미를 더할 수 있는 열린 구조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특히 기억이라는 개념에는 시간의 문제가 포함돼 있다.
음악은 발표되는 순간 대중에게 전달되지만 그 음악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다. 처음에는 멜로디가 좋아서 듣던 노래가 몇 년 뒤에는 특정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때 음악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서 개인의 경험과 결합한 기억의 매개로 변화한다.
리센느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이러한 시간의 축적은 중요한 요소다.
팬들은 음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과 무대, 새로운 앨범과 활동을 함께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개별적인 추억이 만들어지고, 서로 다른 경험들이 하나의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연결된다.
팬덤의 기억은 모두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같은 음악을 매개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공동의 문화적 경험이 형성된다.
리센느가 추구하는 기억의 서사는 이러한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된다.
다만 콘셉트의 일관성이 음악적 완성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독특한 세계관을 갖고 있더라도 실제 음악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면 콘셉트는 설명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음악과 콘셉트 사이의 설득력이다.
멜로디와 가사, 보컬의 질감과 편곡이 하나의 정서를 형성하고, 그 정서가 청자에게 전달될 때 세계관은 음악적 실체를 갖는다.
리센느 역시 기억이라는 개념을 앞으로의 음악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확장하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콘셉트를 반복하는 것만으로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새로운 이미지를 선보인다는 이유만으로 기존의 세계관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변화 속에서 무엇을 유지하고 무엇을 새롭게 제시할 것인지가 아티스트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리센느의 세계관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부드러운 감성과 강렬한 에너지, 익숙한 분위기와 새로운 시도도 기억이라는 공통된 주제 안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콘셉트가 아티스트의 외형을 결정하는 장치를 넘어 음악적 방향을 설명하는 철학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요구받는다. 새로운 노래와 무대, 새로운 이미지가 등장하고 그만큼 빠른 속도로 다음 콘텐츠가 소비된다.
그러나 음악의 가치를 새로운 자극의 크기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어떤 음악은 발표 당시 강렬한 주목을 받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잊히기도 한다. 반대로 처음에는 조용히 받아들여졌던 음악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얻기도 한다.
대중음악의 지속성은 이러한 기억의 문제와 분리하기 어렵다.
리센느의 사례는 K팝에서 콘셉트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생각할 계기를 제공한다.
콘셉트는 음악을 포장하는 장치에 머무를 수도 있고, 여러 작품을 연결하는 서사적 원리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청자가 음악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적 언어로 발전할 수도 있다.
리센느의 세계관은 세 번째 가능성에 주목하게 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의 감정과 시간이 흐른 뒤 되살아나는 기억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결이 존재한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리센느가 얼마나 화려한 세계관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다. 콘셉트가 실제 음악을 통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가에 있다.
음악은 끝나지만 감정은 남고, 무대는 지나가지만 기억은 다시 돌아온다.
리센느의 세계관은 콘셉트에서 출발해 음악으로 확장되고,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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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C뉴스ㅣCBCNEWS 심우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