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뉴스] 규정은 매우 중요하다. 규정은 어떤 것의 성격, 내용, 의미 등을 밝혀 정한다는 의미이다.‘바른 용어’ 쓰기는 올바른 규정의 출발이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한다. 용어에는 대상에 대한 가치와 예우, 시각 등이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 가치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해야 공평하지만 일상에서 쓰는 용어가 객관적이고 균형에 맞는 표현에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용어의 사용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는 대상의 위상도 달라진다.용어나 호칭 속에는 직업을 암시하고 계급이나 위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직업이나 직종을 천시하고 멸시하는 듯한 뉘앙스를 가진 이름을 많이 쓴다. 이런 왜곡된 규정들 속에는 상대 직업에 대한 무지나 비하가 담겨 있다.
식모는 가사도우미로, 우편배달부는 집배원으로, 차장은 안내원으로, 구두닦이는 구두미화원으로, 간호원은 간호사로 바뀌었다.
보모는 보육교사로, 보험아줌마는 생활설계사로, 복덕방 아저씨는 공인중개사로, 청소부는 환경 미화원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이들 직업과 직종에 대한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이것은 공식적인 명칭이 바뀐 것이다.하지만 일부에서는 직업을 비하하는 표현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경찰관을 ‘짭새’로 부르고 군인을 ‘군바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예인은 ‘딴따라’라고 부르고 있다.
또 여전히 장애인의 편견을 조장하는 말도 통용되고 있다.맹인, 소경, 장님, 사팔뜨기, 벙어리, 절름발이, 정박아 등은 속담 속에 묻혀서, 구어체 속에 묻혀서 ‘합법적’으로 쓰이고 있다.
속담도 좋고, 언어의 맛깔도 좋지만 해당 장애인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나의 말투하나에 상대방의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말 속에 들어있는 편견을 하나하나 고쳐나가다 보면 세상은 좀 더 살만해 지리라고 본다.
가령 최근 ‘살색’이라는 색깔은 추방됐다.살색이라고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온 색깔은 사실은 살색이라고 불려선 안 된다.
살색이란 황인종만이 인간이라는 편견이 담겨있다. 흑인들에 대한 비하의 의미가 담겨있다는 오해 소지가 있는 색깔 명칭이다. 만약 백인들이나 다른 인종들이 본다면 살색이라는 색깔에 대해서 의아해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현재 살색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 살색이라는 말은 연주황색, 혹은 살구색으로 바뀌었다.
언어에서 발생하는 편견이나 무뢰함을 알고 있다해도 유희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이를 일상에서 근절하기는 매우 힘들다.
목욕탕에서 때 미는 사람을 세척부장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를 닦으면 배부장, 등을 닦으면 등부장이라고 하는데 ‘과공은 비례’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북스럽다.
또 매춘을 직업으로 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을 매춘녀나 성매매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을 성노동자로 불러 달라고 요구한다.
이도 엄청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는 매춘을 합법화해 달라는 요구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매춘을 성노동으로 불러 달라는 용어 교정 요구는 사회 현실을 감안하면 허용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치매라는 용어도 변경의 대상이다. 치매에 대한 올바른 인식 제고를 위해 인지장애증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다. 치매의 ‘치’자와 ‘매’자는 모두 ‘어리석다’는 뜻이다.
박원순 시장은 최근 비정규직 전환을 꾀하면서 용어에 대한 대폭 수정을 천명했다.
단순잡역, 조무, 인부같은 용어는 삭제하고 상용직 상근인력은 ‘공무직’으로, 단순노무원은 ‘시설관리원’으로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호칭을 변경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 말고도 용어에 대한 교정을 단행하고 있다.박원순 시장은 잡상인이라는 용어를 쓰지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그간 잡상인으로 취급된 사람도 누군가의 부모이고 아들 딸입니다.”라며 비하의 용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박 시장은‘좋은 하루 되세요’는 어법에 맞게 ‘좋은 하루 보내세요’로 바꾸고 ‘시민고객’이란 용어도 시민은 고객이 아니라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시민’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공자는 정치를 하게 되면 맨 처음 정명(正名)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명이란 이름을 정확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대석학 공자도 가장 중요한 덕목을 역할이나 명분에 맞게 불려지는 이름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올바른 정치는 용어 선택에서부터 출발한다.
[데스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