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도 이변이 일어날까? "선거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국회 최다선(9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얘기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시작으로 지난 1일 '슈퍼 화요일'까지 진행된 공화당과 민주당의 후보경선이 흥미진진하여 11월의 대선결과가 몹시 궁금해진다.
미국의 경선은 당원들만 참여하는 '코커스'와 일반 시민도 참여하는 '프라이머리'를 주마다 다르게 정하고 있으며, 대의원 확보도 '승자독식제'를 시행하는 주와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주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보다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특히 이번 후보경선에는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속출하여 더욱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민주당의 경선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 1일 12개 주의 경선인 '슈퍼 화요일'까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현재 확보한 대의원은 1121명이다.
이것은 2위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479명)을 2배 이상 앞서가는 것으로써 15일 열리는 5개주 경선인 '미니 슈퍼 화요일'에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힐러리의 대세론이 굳어갈 전망이다.
반면 공화당의 경선은 흥미롭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한국의 '대우트럼프월드마크'에도 투자한 부동산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의 후보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후보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트럼프는 11개주에서 1위를 차지했고, 2위인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6개주에서 승리했는데, 정작 공화당 주류가 미는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은 미네소타 1곳에서만 승리함으로써 오히려 '반(反)트럼프 단일화'를 위한 사퇴압력을 받고 있다.
승리의 가능성이 큰 트럼프 후보가 인종차별적 발언과 반(反)이민정책, IS에 대한 강공 등 공화당의 가치에 반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선 가상대결에서 트럼프 후보는 클린턴 후보에게 지고 다른 후보들은 이기는 것으로 나타남에 따라 공화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모처럼 다가온 정권탈환의 기회를 놓칠 우려도 있지만, 부시 대통령의 지지기반이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은 트럼프가 선출되면 민주당을 지지하겠다고 반발하는 등 공화당의 지지층도 분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공화당 지도부는 2,3위 후보의 단일화를 추진하자니 2위인 크루즈가 오히려 자신으로의 단일화를 요구하고 있고,
'중재 전당대회'(대의원 과반수를 확보한 후보가 없을 경우 지도부가 후보를 결정)를 검토해 봐도 최다득표자를 후보로 지명하지 않으면 모양새도 우습거니와 트럼프가 불공정경선을 주장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공화당의 더 큰 분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결국 반(反)트럼프 슈퍼팩(거액 정치자금 모금 조직)이 트럼프를 비난하는 광고를 전국적으로 방영하기 시작했고, 롬니 전 대통령 후보도 나서서 "트럼프는 사기꾼이며 가짜다",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등 '반(反)트럼프 공동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오히려 "롬니는 출마하려다가 내가 무서워 접었다. 덩치만 큰 겁쟁이이며 패배자"라고 되받음으로써 '노이즈마케팅'을 성공시키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만약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선출되어 11월 대선에서 클린턴과 대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험 많은 후보가 선거에서 반드시 이기는 것이 아니고, 특히 무명의 후보에게 현직 대통령이 패배한 경우도 많은 미국에서 대선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만 영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으로 백악관과 연방정치 경험이 풍부한 클린턴에 비해 트럼프는 정치활동이 처음인 '아웃사이더'이므로 비슷한 선거사례에 비교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먼저 1960년 닉슨 대 케네디의 대결에 비교해 보자. 공화당의 닉슨 후보는 33세에 하원의원이 된 뒤 상원의원을 거쳐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부통령을 8년간 지낸 거물이었으며,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는 43세의 상원의원이었다.
경험 많은 닉슨이 선거를 압도할 거라는 일반의 예상과 달리 케네디의 선전이 펼쳐졌다.
닉슨에 비해 '대통령수업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은 케네디는 후보지명 직후 7개의 자문팀을 구성해 당선 후의 국정구상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취임 전까지 총 29개에 달하는 정책팀을 운영했다.
특히 처음 시작된 TV토론에 대비하여 케네디는 많은 준비를 한데 비해 닉슨은 풍부한 경험을 믿고 준비를 등한시했다.
심지어 케네디는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눈을 푸르게 분장하는 등 세세한 분야까지 면밀히 준비했다.
TV카메라 앞에서 멋진 모습으로 막힘없이 답변하는 케네디에 비해 닉슨은 카메라 조명의 열기 때문에 땀을 흘리는 모습이 전국에 방영되었다. 결국 약관의 케네디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1992년 부시 대통령과 클린턴의 대결에 비교할 수 있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된 부시는 걸프전 승리와 소련의 붕괴 등 외교적 성공을 거둔 현직 대통령인데 비해 클린턴은 아칸소라는 작은 주의 주지사였다.
부시는 현직 대통령의 장점과 대외적 성공을 내세웠지만, 클린턴은 '바보야, 경제가 문제야(Stupid, its economy)'란 구호로 경제 불황이 공화당의 장기집권 때문이라고 집중 공격했다. 결과는 클린턴의 승리였다.
위의 사례 외에도 조지아 주지사 출신의 카터 후보가 현직 포드 대통령을 꺾고 당선된 사례도 있다.
이와 같이 경험이 부족한 후보가 오히려 선거에서 승리한 사례도 많다. 그러므로 풍부한 경험의 클린턴 후보와 다듬어지지 않은 트럼프 후보의 대결이 여론조사처럼 클린턴의 승리로 귀결될 것이라고 속단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인기가 '여론조사용 반짝 인기'일 것이라는 공화당 지도부의 기대와는 달리 경선 1위로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미국 내에 팽배한 정치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트럼프의 거침없는 발언에 열광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 대선에서도 상당한 득표력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경선결과 트럼프 후보가 1위를 한다면 공화당 지도부도 그 결과를 거부하기 어렵고, 대선에서도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도 "한국의 방위비 부담은 푼돈(peanuts)"이라고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를 대비한 다각적인 외교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