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罪)'라는 게 있다. 우리나라 1만5000여 개의 법률 어디에도 없지만, 가장 무서운 죄(罪)라고 한다. 어떤 약(藥)도 효력이 없기 때문이다.
여야정당에서 괘씸죄에 걸린 사람들은 모조리 공천에서 탈락했다. 지역에서 인기가 있는 후보이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후보이건 간에 경쟁도 못해보고 컷오프(공천배제)됐다.
'친노패권'은 일찌감치 '비노'에게 '괘씸죄'를 적용함으로써 야당을 분열시키고 신당창당으로 내몰았다. '친박패권'은 공천에서 비박에게 '괘씸죄'를 물어 탈당과 무소속 출마로 내몰았다.
그런데 친노는 텃밭인 광주에서 자신들이 내쫓은 '비노'에게 참패의 위기를 맞고 있고, 친박은 텃밭인 대구에서 자신들이 내쫓은 무소속의 돌풍에 위기를 맞고 있다.
아뿔싸. 괘씸죄는 권력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최종적으로 국민의 것이다. 국민이 총선에서 정치권에 오히려 괘씸죄를 묻고 있는 것이다.
성난 민심 앞에 여야당은 무릎 끓는 것 외에 대책이 없는 것 같다. 언론도 연일 여야당이 사죄하는 모습만 보도할 뿐이다. 정책도 실종되고 필승전략도 없는 최악의 '사죄선거'가 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대구에서 무릎을 꿇었다. 지도부가 대구에 총출동하여 '막장공천'과 '진박마케팅'에 대해 사죄했다.
그럼에도 유승민, 주호영 등 공천탈락자들의 지지도는 고공행진을 벌이고, 야당의 김부겸은 대권주자 김문수를 더블스코어로 앞서고 있다.
더민주당은 광주에서 무릎을 꿇었다. 김종인 대표에 이어 문재인 전 대표가 광주에 찾아가서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대권 꿈까지 걸고 '호남홀대'와 '야당분열'에 대해 사죄했다. 그럼에도 광주의 8개 선거구 중 7곳을 국민의당 후보가 휩쓸고 있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삼성의 광주유치'를 공약하고, 이에 질세라 새누리 서청원 최고위원도 '10대기업의 대구유치'를 공약했지만, 표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아무리 표가 급해도 정치권이 대기업 경영문제를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김무성 대표가 현대중공업 구조조정반대 특별조치를 약속한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현대중공업은 9분기 연속 적자로 4조5000억 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 구조조정을 못하면 조선업 세계 1위 거대기업의 위기를 초래할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이다.
성난 민심은 실세정치인의 인기도 좌우한다. 대구에서 최경환의 지원유세를 요청한 새누리당 후보가 없었다. 친박 핵심이며 정권의 2인자, 특히 대구경북 선대위원장인데도 말이다.
호남에서도 문재인의 지원유세를 요청하는 더민주 후보가 없고, 그의 광주방문을 당에서 강력 반대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문재인의 호남방문은 후보자의 득표지원이 아니라 자신의 대권행보일 뿐이라는 분석이 많다.
반면에 안철수와 국민의당은 예상외의 기대를 받고 있다. 공천직후 김종인의 후보단일화 제의에 공천장을 반납한 후보도 있었고, 출마를 포기하고 더민주당 후보의 손을 들어준 후보도 있었다.
심지어 김한길, 천정배 공동대표마저도 단일화에 현혹돼 강하게 압박했지만, 안철수 대표가 이번에는 '철수(撤收)'하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강수(强手)'를 둔 것이 주효했다. 박근혜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원칙과 신뢰는 이번 선거에서 안철수에게 넘어갔다.
오늘 총선이다. 많은 우려와 함께 기대 또한 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향후 정국의 흐름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이다.
거시적인 관심포인트는 새누리당의 과반의석(151석) 확보여부, 더민주당의 개헌저지선(120석) 확보여부, 국민의당의 원내교섭단체(20석) 확보여부다. 이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다수의 여론조사와 각 당의 분석을 보면 국민의당만 승리를 낙관하고 있다.
미시적인 관심포인트는 대구와 광주의 선거결과다. 대구는 무소속돌풍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광주는 국민의당이 전부를 석권할지 여부가 관심사다.
역대선거에서 항상 몰표를 던졌기에 '막대기선거(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를 치러왔던 대구와 광주가 이번 총선에서 최대의 관심지역, 최고의 이변지역이 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국민의당이 수도권에서 당선자를 얼마나 내느냐다.
결과에 따라 지역정당이냐 전국정당이냐가 판가름나기도 하지만, 수도권에서 표의 확장성이 입증된다면 앞으로 여야당의 무한대치구도를 허무는 정계개편의 중심세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오늘 국민이 정한다. 국민은 여야당의 막장공천도 심판하고, 권력실세들의 기고만장도 심판한다.
특히 오늘은 대구와 광주에서 텃밭을 갈아엎고 기득권을 깨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국민이 언제든지 괘씸죄를 물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정치가 변화하고 발전하기 때문이다.
[류재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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