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클래스'가 무엇인지 보여준 스페인에게 1-6으로 참패했다. 한국은 지난 1996년 12월 이란과의 아시안컵 8강에서 2-6으로 패배한 이후 20년 만에 6골을 내줬고 '슈틸리케호'는 A매치 10경기 연속 무실점과 16경기(몰수승 포함) 연속 무패행진을 마감했다.
지난 1일 오후 11시 30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레드불 아레나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A매치 친선경기에서 1-6으로 패했다. FIFA 랭킹 54위인 한국과 6위인 스페인의 객관적인 전력 차이로 경기 시작 전부터 힘든 승부가 예상됐지만 6골을 내준 것은 충격적이었다.
기성용(스완지 시티)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 실수가 가장 큰 패인이었다. 이런 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세계 무대에서는 절대 성적을 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기성용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경기는 사실상 한국 스스로가 무너진 경기였다.
전반 30분까지는 한국이 스페인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보였다. 전반 8분 남태희(레퀴야)가 찔러준 패스를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슈팅으로 연결했으나 골문을 벗어났다. 전반 23분에는 장현수(광저우R&F)의 롱패스가 지동원(아우크스부르크)을 거쳐 황의조(성남FC)의 슈팅 시도로 이어지기도 했다.
'무적함대' 스페인도 전방에서부터 압박을 시도하며 과감하게 플레이를 하는 한국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스페인 특유의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한국의 조직력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반 30분 다비드 실바(맨체스터 시티)의 프리킥 슈팅이 우측 골포스트와 크로스바 사이를 정확하게 파고들며 그림 같은 골로 연결되자 한국 선수들의 정신력까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비드 실바에게 실점하고 2분 만에 세스크 파브레가스(첼시)에게 실점하면서 조직력이 무너졌다. 마르크 바르트라(FC바르셀로나)가 전방으로 길게 찔러준 패스를 장현수가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에게 헤딩으로 백패스를 했는데 그 볼이 짧았고 김진현이 잡았다 놓친 공을 알바로 모라타(유벤투스)가 가로 챈 뒤 파브레가스가 마무리했다.
그리고 6분 뒤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첼시)가 왼쪽 측면에서 한국 수비 뒷 공간으로 스루 패스를 놀리토(셀타 비고)가 받아 골을 넣으면서 한국은 8분 사이 세 골을 헌납했다. 첫 골을 허용한 후 내준 두 골은 한국의 실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후반들어 '체면 1골'
후반전에도 스페인은 한국을 몰아붙였다.
후반 5분에 티아구 알칸타라(바이에른 뮌헨)의 코너킥을 모라타가 헤딩골로 만들었고 3분 뒤인 후반 8분에는 헥토르 베예린(아스날)이 오른쪽 측면에서 연결해준 크로스를 놀리토가 골로 마무리했다.
0-5로 뒤져있는 후반 16분 슈틸리케 감독은 손흥민, 김기희(상하이 선화), 한국영(알 가라파)을 내보내고 이재성(전북 현대), 주세종(FC서울), 곽태휘(알 힐랄)을 들여보내 분위기 반전을 꾀했는데 스페인의 수비 교체와 맞물리면서 효과를 얻었다.
후반 20분 역습 찬스에서 남태희가 마음먹고 감아 찬 슈팅이 골문 바로 옆을 지나면서 아쉬움을 남겼고 3분 뒤 지동원의 크로스를 교체해 들어간 석현준(FC포르투)이 다리를 뻗으며 슈팅을 시도했지만 볼이 끝내 닿지 않았다. 석현준은 후반 27분 박스 안에서 맞은 결정적인 찬스에서 강력한 슈팅을 때렸지만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FC포르투)의 선방에 막혔다.
한국은 이 기세를 이어가 후반 38분 이재성의 패스를 받은 주세종이 중거리 슈팅을 때려 기다리던 골을 만들었다. 상대 수비수를 맞고 굴절되긴 했지만 과감한 슈팅으로 얻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44분 김진현의 실수로 모라타에게 다시 골을 허용하며 1-6으로 대패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스페인과의 실력이) 이렇게 차이가 클 줄은 몰랐다"며 "스페인이 원하는 축구를 못하게 하려면 기술적인 차이 때문에 파울로 끊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축구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휴가도 반납하고 자발적으로 훈련했다"며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고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슈틸리케 감독은 "정신적인 부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체코 경기에 승부수 띄워야
경기 후 우리나라 언론과 외신까지 골키퍼 김진현의 거듭된 실수를 패배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김진현은 전반 32분 장현수의 헤딩 패스를 제대로 잡지 못해 골을 허용했고 이어진 세 번째 실점 상황에서는 애매한 위치선정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또 후반 4분 코너킥 상황에서 펀칭을 시도했지만 타이밍이 좋지 못해 실점했고 경기 종료 직전에는 마지막 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며 여섯 번째 골을 허용했다.
김진현은 이날 최악의 경기력을 선보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6실점은 김진현만의 문제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공격라인에서는 14개의 슈팅과 7개의 유효슈팅에서 1골을 넣었다. 스페인은 17개의 슈팅과 9개의 유효슈팅에서 6골을 넣었다. 한국의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을 여지없이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손흥민은 이날 1개의 슈팅만을 기록했다. 또 선수들끼리 동선이 겹치며 자주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 조직력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앙에서는 기성용이 패스를 찔러주며 활기를 불어넣으려 했으나 그에게 볼이 거의 연결되지 않았고 선수들 간 유기적인 움직임이 나오지 못했다. 스페인의 막강한 중원 압박에 제대로 힘을 써보지 못한 것이다.
수비 라인은 상대의 패스 한방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며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한계를 드러냈고 특히 빈번한 백패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그리고 골키퍼마저 집중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잦은 실수를 범해 6골을 허용했다.
한국은 스페인에게 당한 대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지, 아니면 또한번 유럽축구의 벽을 실감하며 주저앉는 모습을 보여줄지는 오는 5일 체코와의 친선경기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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