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어 제 세계를 향해 날갯짓을 한다. 그게 알이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는 생명의 순서이다. 품안을 벗어나는 병아리는 강한 놈이다. 강하기에 어미의 품을 벗어나서 홀로 독립을 선언할 수 있다.
어미 역시 그 강한 날갯짓을 인정하기에 병아리에서 닭이 된 새끼를 놔줄 수 있다. 태어나서 보살핌을 받다 세상살이를 배우고 독립하는 것은 동물의 이치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가정에는 닭이 못 된 ‘늙은 병아리’들이 많다. 웬만한 가구에는 아직도 어미 품을 벗어날 날개짓을 못하는 취업 재수생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에는 병아리와 닭이 나온다. 병아리와 닭을 등장시키는 이유는 저학년의 환경이 닭과 병아리의 관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대개의 삽화에는 어미닭이 있고 주변에 병아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자애와 어엿한 보살핌이 느껴지게 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 함의는 초등학생이 병아리이고 학교나 사회가 닭이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즉 어린이들은 닭과 병아리 관계도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는 점을 배우게 된다.
즉 어린이들의 공생활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공적인 생활에 접어드는 법을 배우고 익힌다.
젖먹던 시절, 요에다 밤마다 지도를 그렸던 시절, 유치원에서 왕관을 쓰고 있던 시절 등이 사회화 되며 녹여지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성장하고 커가며 또 다른 자아가 탄생하고 달라진다. 알에서 낳은 병아리들이 마치 어미를 쫓으며 많은 것을 배우는 것처럼 사람들도 이와 같이 많은 것을 배우며 자란다.
어미닭이 바라는 것은 병아리의 성장이다. 사람들도 자기 자녀들이 성장해 주길 바란다. 어미닭이 병아리가 왜 커야 하는지를 아는 것처럼 사람들도 왜 자신의 자녀들이 자라줘야 하는지를 안다.
중닭이 되고 성인 닭이 되어야 온전히 세상살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수시 때때로 나타나 여기저기에서 발목을 채는 무서운 경쟁이 도사리고 있다. 어미닭이 병아리의 온전한 날갯짓을 기대하는 것은 이런 무시무시한 생존구도에서 버텨나게 하기 위한 힘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병아리가 약해질 때는 가을이라고 한다.
가을에 병아리는 약함의 상징이다. 서리 병아리라는 늦가을의 병아리는 병약한 상태를 말한다. 어미가 날개 안에 제 병아리들을 품을 때 서리 병아리나 문열이가 되지 말아달라는 간절한 포옹이 담겨 있을 것이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는가?
사람 역시 강한 다리 강한 날개를 같지 못하면 도태되는 닭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이 성장했다는 것은 더하기에 더하기를 더해서 자라난 것이다. 이들이 대학까지 졸업했을 때에는 닭으로 치면 중닭이 되어 극한에 홰를 치며 날갯짓을 할 때이다.
이 왕성한 때에 우리들의 늙은 병아리는 서리병아리처럼 지고 있다. 취업이라는 덫에 빠져 강한 날갯짓이 헛수고가 되고 있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다.
청년세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는 우리 젊은이들은 엄청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영어 스펙, 학점 스펙, 군대스펙, 봉사 스펙까지 따 놓았지만 일할 곳이 마땅치 않다.
날갯짓으로 지상을 박차고 나는 수준으로는 안된다. 문열이만 안되면 살아 남을 수 있는 동물의 세계와는 달리 최고가 되어야만 살아 남는다.
어찌보면 닭의 세계보다도 더 잔인한 형국이라 하겠다.
닭의 비유하자면 둥지를 박차고 나오는 수준이 아니라 함정에서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초울트라 날갯짓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날개를 달아도 날갯짓 한번 못하는 닭은 슬플 것이다.
고용둔화가 소비감소로 연결돼 실물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뉴스가 있다. 소비부족 현상은 기업을 위축시키고 이런 악순환에 빠진 경제는 계속 이런 양상을 유지할 것이다.
누구나 평생직장을 가지려 하는 욕망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들의 행위를 나무랄 수만은 없다.
고용 찬바람에 늙은 병아리들이 늘어나고 이런 것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는 현실이다. 평생의 업으로서 삼고 할 일이 이렇게 없어서는 희망이 싹트기 어렵다.
많은 젊은이들이 늙은 병아리가 되어 곤란한 경우에 처해있어도 뾰족한 처방이 없다. OECD 자살율 1위와 ‘병닭’이나 늙은 병아리가 상관관계에 있다는 주장을 굳이 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살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혐의 짙은 점에선 유의해 볼 대목이다.
립서비스나 스쳐지나가는 행정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 자립의 정신을 유지하게 해주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으레 병아리나 닭이 나오면 튀어나오는 고사성어에 ‘줄탁동시(?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늙은 병아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이런 절차가 필요할 듯하다.